지난 8월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열린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이 영화제 측과 공식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상을 받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돼 기쁘고, 나를 비롯해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알레시오 피치카넬라 제공
지난 8월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열린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이 영화제 측과 공식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상을 받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돼 기쁘고, 나를 비롯해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알레시오 피치카넬라 제공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영화와 일반 상업영화의 차이점에 대해 수첩에 ‘원’과 ‘삼각형’을 그리며 설명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영화와 일반 상업영화의 차이점에 대해 수첩에 ‘원’과 ‘삼각형’을 그리며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로카르노영화제 대상 받은홍상수 감독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즉흥적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미리 써놓지 않는다. 배우들과 시놉시스를 함께 읽으며 작품의 틀을 잡고, 촬영 당일 현장에서 대본을 완성해 배우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치밀한 계획 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영화에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나름의 ‘틀’ 안에 담겨 꿈틀거린다. 그의 영화 틀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갖추고 갈등, 해소, 반전 등의 요소를 풀어내는 일반적인 영화의 구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우연히 만날 때가 많다), 밑도 끝도 없는 대화(곱씹어보면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를 나누는 상황이 반복되다 끝난다. 몇몇 작품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아예 뒤섞어 놓기도 했다. 관객들은 이런 그의 작품을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으며 자신의 치부를 들킨 듯 뜨끔해 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그는 “좋은 영화란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고 나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영화”라고 밝혔다.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 틀을 ‘원’으로 설명한다. 원의 중심에는 영화의 구심점이 되는 심상(心象)이 있고, 원을 따라 수많은 요소들이 돌기처럼 붙어 있다. 또 일반적인 상업영화는 꼭대기에 주제를 놓고, 그 주제에 맞춰 올라가는 ‘삼각형’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내 영화 속 요소 중 어떤 관객은 두 개를 가져가고, 또 어떤 관객은 스무 개를 가져간다”며 “어느 것 몇 개를 취하느냐에 따라 관객은 다른 영화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영화들은 적어도 주제가 뭔지 모르지 않지만 내 영화는 주제를 모를 수도 있다”며 “그러다 보니 내 영화를 보고 폭소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무시하거나 불편해하는 관객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와 관객들의 일반화된 기대치 사이에 간극이 있다”며 “그걸 억지로 줄이려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저버리게 된다.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지만 관객을 만족시켜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몇 년 전 칸국제영화제에서 그를 만나 ‘최근작들은 점차 대중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묻자 그는 “관객들이 내 영화의 틀을 점차 이해하고 있고, 나도 의도적이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연출 전공으로 입학한 그는 바로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시카고 예술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귀국 후 한양대, 성균관대 등에서 강의를 하다 영화사 기획실로 자리를 옮겨 영화 연출을 준비했다.

지난 1996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내놓은 그는 이 작품으로 제17회 청룡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제1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제27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 등을 휩쓸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흔한 상황을 스크린으로 옮겨와 독특한 색깔로 녹여낸 그의 첫 작품에 매료된 관객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1998년 만든 ‘강원도의 힘’이 제51회 칸영화제 공식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며 그의 이름이 세계 무대에 알려졌다. 당시 그는 한국 영화를 해외에 알린 공을 인정받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도 수상했다.

이후 그는 ‘오! 수정’(2000년·주목할 만한 시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년), ‘극장전’(2005년·이상 장편 경쟁),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년·감독주간), ‘하하하’(2010년), ‘북촌방향’(2011년·이상 주목할 만한 시선), ‘다른 나라에서’(2012년·장편 경쟁) 등 칸영화제에 국내 감독 중 최다인 8번 진출하며 ‘단골 초대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또 베를린국제영화제(2006년 ‘해변의 여인’·2008년 ‘밤과 낮’·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와 베니스국제영화제(2010년 ‘옥희의 영화’·2014년 ‘자유의 언덕’) 등 세계 3대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해외 팬층도 두터워졌다.

해외에서 유명세 덕을 본 경우도 있다. 2008년 ‘밤과 낮’ 촬영을 위해 프랑스 파리 한 박물관에 간 그는 그곳 직원이 수천만 원의 대여료를 요구해 난감한 상황이 됐다고 한다. 그때 출근을 하던 박물관 관장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자신이 팬이라고 밝히며 무료로 촬영을 허락했다고 한다.

건국대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자신의 17번째 연출작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지난 8월 열린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국제경쟁부문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그는 앞서 2013년 ‘우리 선희’로 이 영화제 같은 부문에 초청돼 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주연 배우인 정재영은 이번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4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홍 감독 영화의 일반적인 소재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그렸다. 자신의 영화를 틀고,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수원에 간 천수(정재영)는 화성행궁에서 화가 희정(김민희)을 만난다. 두 사람은 희정의 작업실에 갔다가 저녁에는 횟집에서 소주를 함께 마신 후 희정의 선배 카페로 가 술을 더 마신다.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구성된 이 영화는 같은 상황을 반복하며 미묘한 차이로 재미를 더해준다. 1, 2부를 비교해 봐도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리는’지는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할만큼만 하고 사는 거다. 뭘 더 원해”라는 천수의 대사에 홍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하다.

홍 감독은 이 영화 전단지에 넣을 인터뷰에서 “인물의 감정적 태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제스처, 얼굴 표정, 말투 등의 변화를 가지고 1, 2부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려 했다”며 “관객이 그런 식의 차이에 익숙해졌을 때 다른 종류의 좀 더 굵은 차이들도 하나씩 생겨나는 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 우연히 눈이 내리자 시나리오를 일부 수정해 눈 장면을 넣은 것에 대해 “눈이 올 줄 몰랐는데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했다”며 “점심을 먹고 나오니 온통 하얀 세상이 돼 있어 엔딩 장면을 바꿔 눈 장면을 넣었다. 하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것 같다”고 소개했다.

홍 감독은 ‘이 영화가 어떤 느낌으로 기억되느냐’는 질문에 “나는 주어진 것들을 귀하게 생각한다”며 “내가 추구해서 얻은 것보다 그때 주어진 환경들, 배우들, 우연들에 나를 온전히 맡긴다”고 답했다. 그는 또 제목을 띄어 쓰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글자 수가 워낙 많아서”라는 짧은 답을 내놨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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