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창작 수업 내용 엮어내
“시는 아픈 새끼발가락 같습니다. 새끼발가락은 몸의 최말단이지만 그것 하나가 고장 나면 움직일 수도 뛸 수도 없습니다. 시는 경고하는 것입니다.”
깊은 공부에서 비롯된 사유, 힘 있는 언어로 우리를 매혹시켜 온 이성복(사진) 시인. 시론집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문학과지성) 3권을 한꺼번에 내놓은 그는 9일 낮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를 아픈 새끼발가락에 비유했다.
이어 그는 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라고, 문학은 ‘다른 사람을 위한 스크럼 짜기’라고 했다. “축구에서 무승부가 되면 승부차기를 합니다. 선수가 공을 찰 때 나머지 선수들은 스크럼을 짜지요. 문학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사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스크럼을 짜는 게 아닐까요. 그것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놓은 시론집은 2012년 30년간 재직했던 계명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대학원에서 3년을 더 가르친 그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학생과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 창작 수업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제목으로 ‘이성복의 공부’ ‘이성복의 마지막 수업’ 등을 생각했지만 너무 비장해 그냥 시론집이라고 했다”고 한다.
‘극지의 시’는 2014년 후반과 2015년 초반의 강의, 대담, 수상 소감을 시간 순서대로 엮은 산문집이며 ‘불화하는 말들’은 2006년과 2007년 사이 시 창작 수업 내용을 ‘시’의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런 식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면/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예술은 불화(不和)에서 나와요. 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오직 시(詩)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동시에)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이렇게 시가 된 창작 수업 128개가 담겨있다.
‘무한화서(無限花序)’는 2002년에서 2015년까지 대학원 시 창작 수업 내용을 471개의 ‘아포리즘’으로 정리한 것이다. “화서(花序)는 꽃이 줄기에 달리는 방식입니다. ‘유한화서’는 꽃이 속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피는 것이라면 ‘무한화서’는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피는 것입니다.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바로 시를 비유한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 시론집을 이삭줍기에 비유했다. 책으로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미 강의로 흩어져 버린 말들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삭줍기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흠집도 많은 것들, 하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더 맛있을 수 있습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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