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 대란’이 발생하면서 서민층의 삶이 한층 팍팍해지고 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경우 가계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전세자금을 은행에서 빌릴 때 내는 이자율보다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월세 전환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만약 자금은 충분한데 전세 물건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사는 경우 가계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개인이 2년 정기예금을 넣어서 얻을 수 있는 이자율보다 전·월세 전환율이 적어도 2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전세난이 서민층에게 시사하는 것은 또 있다. 과거에 월세는 ‘막 삭는 돈’이라고 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적은 돈이라도 모아서 전세를 살고, 전세 자금을 한 푼 두 푼 늘려야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데, 그냥 없어져 버리는 월세를 살아서는 장래에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세를 사느냐, 월세를 사느냐는 단순히 집을 빌리는 방식의 차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통계청의 ‘2015년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 4∼6월 가계의 실제거주비(월세) 지출은 월평균 7만3900원으로 2003년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의 통계에는 전세 가구나 자가보유 가구의 주거비는 ‘0원’으로 잡히기 때문에 실제주거비 평균이 7만 원대에 불과한 액수로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통계는 현실과 동떨어져도 너무나 동떨어져 있고, 제대로 된 전세와 월세에 대한 통계조차 없는 상태에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주택 정책을 수립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부실하기 그지없는 통계청 통계를 살펴봐도 거주비 지출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2분기 월 6만600원이던 실제주거비는 올 2분기에는 7만3900원으로 21.8%나 급등했다. 최근 실제주거비가 급격히 오르는 이유는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가구가 많기 때문이다.
‘전세 대란’은 거시경제 이슈로까지 부상했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노후 대비 때문에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평균소비성향’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월세의 확산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떨어뜨려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올 2분기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1.6%를 기록,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준까지 추락했다. 전세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임대 방식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월세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정책을 보면 전세에서 월세로 급격한 전환이 불러오는 충격을 막기는커녕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을 부추기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정부가 아무리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많이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전·월세 전환 속도가 이어지고, 가계의 가처분소득 하락이 지속될 경우 서민층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세 대란의 충격을 줄이고, 전세의 월세 전환에 따른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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