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부 찾은 이영희 씨 통곡
韓 가장 가까운 남쪽 바닷가에
광복되자 배 타려고 모여들어
얼어죽고 굶어죽어 언덕 메워
2012년부터 111곳 조사 마쳐
연말 위원회 해산… 조사 끝나
“작은아버지! 한 많은 세월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부모 형제, 고국 산천이 얼마나 그리웠나요. 이제 모든 시름 다 놓으시고….”
9일 오전 러시아 사할린 남단 코르사코프시 제2공동묘지. 한국에서 온 조카 이영희 씨는 일제 때 사할린에 강제징용돼 탄광 등에서 고생하다가 끝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이곳 묘지에 묻힌 작은아버지 고 이상룡 씨의 유골 봉환 묘제(墓祭·조상의 산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올리며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흐느껴 울었다.
역시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돼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현지를 방문한 손자 오대석 씨도 묘제에 앞서 “풀이라도 뽑아 드리겠습니다”라며 봉분에 난 잡초들을 일일이 손으로 뽑았다.
오 씨는 “아버지가 오셔서 모셔 가야 하는데 이미 돌아가셨다”면서 울먹였다. 오 씨는 “아버지 옆에 모시겠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생업 때문에 할아버지를 모시러 오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 직원이 대신 절을 하고 술잔을 올렸다. 묘제가 끝나자마자 현장 인부들이 곡괭이로 봉분을 파기 시작했다. 유골들은 모두 화장돼 봉환된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그것도 추석을 앞두고 뒤늦게나마 고국 땅으로 돌아가는 13기의 ‘위(位)’는 그나마 복이 있는 편이었다. 사할린에서 발견된 한인 묘 가운데 30%는 무연고 추정 묘이다. 징용된 부모님의 묘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골을 봉환하라고 연락을 해줘도 오히려 화를 내며 거부하는 후손들도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고국 땅으로 가지 못하는 주위의 비석들은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 이날 유독 눈에 띄는 비석 하나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한국 지도와 사할린 지도를 그린 다음 그 사이에 해와 달을 그린 그림을 붙여 놓은 비석이었다.
사할린 남쪽 바닷가인 코르사코프에 징용 피해자들이 많이 몰려 살다 결국 이곳에 묻힌 것은 해방 후 돌아올 배를 제일 먼저 타고 고국으로 돌아갈 일념에서였다고 한다. ‘1945년 애타게 기다리던 광복을 맞아… 혹은 굶어 죽고, 혹은 얼어 죽고,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오지 않아 하릴없이 빈손 들고 민들레 꽃씨마냥 흩날려….’(배를 세우는 뜻은 - 김문환 글) 이날 남쪽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망향의 언덕’에 세워진 배 모양의 위령탑에 적힌 시가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옛 대한지적공사)는 지난 2012년부터 사할린 일대 공동묘지 전수 조사를 벌여왔다. 그 해 66개 공동묘지 조사를 마쳤고, 이후 남동지역에서 11개, 지난해 북동지역에서 19개 공동묘지의 조사를 마쳤다. 올해 15개 공동묘지에서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1세 사할린 한인은 4만여 명에 이르지만 발견된 묘보다 화장이나 가매장 해버려 묘조차 없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위원회가 올해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해산 절차를 밟게 되면서 공동묘지 전수 조사사업은 끝난다. LX의 사할린 한인 묘 현황조사 사업도 올해가 끝인 셈이다.
사할린 코르사코프(러시아) = 글·사진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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