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서문’은 작가가 내미는 손입니다. 저자에 따라 에필로그가 되기도 하고, 짧은 ‘작가의 말’로 대신하기도 하지만 이는 저자가 독자에게 직접 건네는 인사입니다. 왜 책을 썼는지, 과정은 어땠는지, 말하고 싶은 내용이나 주제는 무엇인지 들려줍니다. 몇 페이지 안 되지만 긴 본문보다 깊은 통찰을 주기도 하고, 충실한 서문에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만족감을 얻기도 합니다.

서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에 나온 두 권의 책 때문입니다. 스티븐 킹의 중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황금가지)와 우주생물학자 데이비드 디머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최초의 생명꼴, 세포’(뿌리와 이파리)입니다. 소설과 과학책, 분야가 전혀 다른데 두 저자는 서문에서 모두 ‘소명’을 이야기했습니다. 흥미롭게 둘 다 ‘돈’과 가치 비교를 하며 ‘과학자의 소명’과 ‘소설가의 의무’를 말합니다.

브램 스토커상(2010)을 받은 중편집에서 킹은 첫 소설 ‘롱 워크’를 쓴 열여덟 살 이후 ‘이야기와 진실’은 소설가로서 자신의 변치 않는 의무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삶을 그리고 종종 우리 주변에 보이는 끔찍한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티븐, 당신 말이야 작가로 돈도 엄청 벌었고, 그 진실이라는 것도 변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렇다. 나는 이야기를 써서 돈을 꽤 많이 벌었다. 하지만 돈은 부수 효과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돈을 노리고 소설을 쓰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물론 진실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결정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소설에 관해 논할 때 작가의 의무는 단 하나.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진실을 찾는 것이다.”

우주생물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기원을 탐색한 ‘최초의 생명꼴, 세포’ 서문에서 디머 교수는 “과학자가 억만장자가 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돈과는 다른 종류의 부를 얻을 드넓은 원천을 찾아냈다. 그 부란 바로 발견이라는 보물이다” 며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한없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얻기란 조금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과학의 길을 가는 동안 과학자는 수백 가지 물음을 던지고 수천 가지 가설을 시험한다. 가설들은 대부분 틀린다. 그러나 이따금 시험을 견디고 살아남아 과학이라는 지도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 넣는 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한 경험이기에 그 답을 찾아 나서는 일에 기꺼이 평생을 바친다.” 모두가 성공의 증거로 삼는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소명을 말하는 두 저자가 내민 손을 잡으며 평생을 기꺼이 바칠 나만의 소명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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