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 게일 루빈 지음, 신혜수·임옥희 외 옮김 / 현실문화
게일 루빈(사진) 미시간대 인류학·비교문학 및 여성학 교수는 두 차례 커밍아웃을 했다. 처음은 레즈비언 커밍아웃이며, 그 뒤엔 사도마조히스트(S/M) 커밍아웃이다.
그에 따르면 커밍아웃은 자기 인식의 한 형태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기꺼이 알리는 공적 선언, 그리고 처음 삶을 시작했던 ‘이성애 세계’에서부터 자신이 살고 싶어 가는 다른 ‘변이의 세계’로 떠나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페미니스트인 그에게도 변이의 세계로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S/M은 미국에서도 남성 폭력적 섹슈얼리티로 해석되면서 그의 강연장 밖에는 한때 동지였던 페미니스트들이 시위를 벌이는 상황이 연출됐다. 책은 이 급진적인 성 인류학자가 지난 40년간 써온 주요 논문 14편을 엮은 선집이자 그녀의 유일한 저서이다.
스물다섯 살의 그녀에게 일약 명성을 안겨준 ‘여성 거래’(1975),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에 비견되며 엄청난 논쟁의 후폭풍에 휩싸인 ‘성을 사유하기’(1982)가 국내 연구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번역돼 읽히긴 했지만 그의 저작이 완전히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에는 화제가 된 두 편의 논문을 비롯해 19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S/M 성적 해방구 ‘카타콤’의 풍경, 남성 동성애 가죽족(gay leathermen)집단, 레즈비언의 부치성(butchness) 등 성적 하위문화에 대한 생생한 민족지적 연구도 들어가 있다. 한국 출판사가 판권 계약 때문에 연락하자 저작권사인 듀크대 출판부가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급진적인 책을 출판할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는 전언처럼 책의 내용은 우리에게 낯설고, 주장은 급진적이다.
근본적으로 게일은 “한 사람의 해부학적 성이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을 행하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가라는 문제와 무관한 사회”를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다. 개인의 책임하에 이뤄지는 모든 성적 욕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는 책에서 낯선 성적 취향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그는 포르노그래피의 위해성을 거부하는 한편 오히려 포르노그래피를 가부장적인 폭력성의 구조라고 보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사안에서 진보를 자처하지만 성 문제에 대해서만은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이 때문에 1960년대 민권 운동과 함께 태동한 성 논의가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끌어낸 미국에서도 이 책은 급진적이라고 분류된다.
하지만 우리 현실과 상당히 먼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유는 그의 논문 ‘성을 사유하기’의 첫 문장에서 찾을 수 있다. “성을 사유할 때가 왔다.” 게일은 당시 “섹슈얼리티가 가난, 전쟁, 질병, 인종주의, 핵 전멸 같은 중대 사안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미미한 주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상상할 수조차 없는 파괴의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에 사람들은 위태로울 정도로 섹슈얼리티에 열광한다”며 이 같은 성의 이중성을 사유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이 논문을 발표한 1980년대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고도화되는 반면 정치적으로는 보수화돼 개인의 성적 욕망은 한껏 부추겨지지만 성의 정치화는 더욱 가속화된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포르노그래피가 넘쳐나지만, 한쪽에서는 이성애, 기혼, 일부일처제, 재생산에 바탕을 둔 성에 대한 가치는 더 공고해졌다는 것이다.
‘병변이란 모든 삶의 근본적인 특질’이라는 게일은 타고난 성을 넘어선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여기에 덧씌워진 이데올로기, 정치성, 폭력성을 정확하게 구분해 내려 한다. 이것이 바로 책이 우리 사회에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폭력성과 섹슈얼리티를 혼동한 ‘맥심’ 잡지광고 논란, 미성년 보호를 외치면서 10대 여자 아이돌 그룹의 치마는 나날이 짧아지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성, 폭력, 정치, 이데올로기 등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