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따라 국가 간의 경제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철강·석유화학 등 간판 제조업을 위협하고 있고, 일본은 엔저 호기를 최대한 활용해 우리의 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주로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에 진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동안 전자와 자동차 등 우리의 주력 산업에서 많은 흑자를 냈지만 새로운 산업 진출을 위한 투자는 부족했다. 지금 선진국이 약진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의료기기, 제약, 항공기 등 첨단산업으로 진출하지 못하니 중국 등 개도국의 추격에서 벗어날 공간이 없다.
신산업으로 무정전 전원공급장치(UPS)가 있다. 정전 등으로 전기가 끊겼을 때 전기를 일시적으로 공급해 주는 장치로, 전산망 운영에는 필수적이다. 전 세계 UPS 시장이 80조 원(500킬로볼트암페어(kVA) 이상)인데, 독일의 슈나이더와 미국의 에머슨, GE 등 3개 회사가 60조 원을 차지한다. 이렇듯 선진국의 몇몇 대기업이 철옹성을 쌓고 있는 것이 ‘선진국 산업’이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싸움을 걸듯 우리 중소기업이 과감히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 KS 등 국가공인 품질인증 30개, 기술특허를 35개나 받고 조달청의 우수 조달물품으로 지정받아 수의계약도 가능하게 됐다. 문제는 국내 공공 조달시장에서 우리 기업 제품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다국적기업의 과점 구조여서 새 기업의 진출이 쉽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우리 공공기관들은 가급적 검증된 제품을 구매하려 한다. 사용 선례가 없는 제품을 구매했다가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 개발한 우리 제품의 테스트 베드가 없어지고 있다. 한 번은 사줘야 실적이 생기고 당당하게 다음 입찰과 국외 진출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이 유지돼야 우리 기업이 신산업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고용도 늘리고 국부도 창출할 텐데 이것이 불가능해진다.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과거처럼 애국심에만 호소해 국산품을 사용하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최소한 공정 경쟁은 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조달청은 국내 기업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 기업과 동등한 조건으로 입찰 공고를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외국산 소방 헬기 수요기관에 대해 유사한 국산 제품이 있을 경우 국내 기업을 참여시키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국내 산업과 기술의 육성은 중요하다. 경쟁을 확대해서 외국 물품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장기적으로 AS 등 유지 관리 비용이 저렴하게 돼 국가재정을 절약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도 2009년 사회간접자본 건설 시 미국산 철강제품 사용을 의무화한 ‘바이 아메리카’ 법안을 처리한 바 있다. 중국도 같은 해 정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자국산 물품과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바이 차이나’ 지침을 발표했다.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과 기술을 보호하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 창출은 쉽지 않다. 여러 정부에 걸쳐 차세대 성장동력, 신성장동력, 미래 성장동력 등 다양한 구호 아래 새로운 산업 진출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 신상품을 개발한 기업을 적극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공공부문에 국산 철강재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 기술력 있는 국내 기업 보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 개발 초기의 국산 제품을 구매하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그에 부응하는 ‘당근’을 주는 등 국산 구매 환경을 적극 조성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공공조달 시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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