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석 / 고려대 교수 행정학

내년 정부 지출은 올해보다 11조3000억 원 늘어난 386조7000억 원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나랏빚은 올해보다 50조 원 늘어난 645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내년도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40.1%다. 국가채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14%에 비해 작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다. 적자는 계속 누적되고 있다.

빚의 의미는 상대적이다. 즉, 국가든 개인이든 원래 가진 재산의 규모와 갚을 수 있는 잠재력에 따라서 비슷한 규모의 빚도 그가 지니는 의미는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독일은 나랏빚이 GDP의 79%에 이르지만, 쌓아놓은 재산이 적지 않고 산업경제의 활력도 매우 높아서 빚 걱정을 크게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물려받거나 벌어놓은 국부가 빚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지 않다. 그리고 수출이 주된 수입원임에도 수출 경쟁력을 낙관하기 쉽지 않고,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 때문에 경제 활력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내년에는 복지 분야의 예산이 6.2%로 가장 많이 늘고, 사회간접자본과 산업 분야 예산은 각각 6.0%와 2.0%씩 줄어든다. 경직성 의무 지출 비율은 올해 46%에서 2018년까지 50.8%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복지 및 보건 수요 확대는 한국의 재정적자를 늘리는 가장 큰 이유다. 내년 예산에서 복지 분야 예산 증가분만 7조2000억 원에 이른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복지 수요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기초생활보장과 공적연금은 대표적인 경직성 지출이기 때문에 제도를 크게 바꾸지 않는 한 증가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외국의 경험을 보면 경직성 지출 수요는 종종 예상을 뛰어넘어 증가한다. 예를 들어, 1965년도에 미국 의회는 경직성 지출인 의료보장비가 1990년도에 120억 달러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지출은 900억 달러가 넘었다. 우리의 나랏빚도 주로 경직성 지출 때문에 늘고 있다. 따라서 가만 놔두면 상황은 더욱 더 급속히 악화할 수도 있다.

사실 경직성 지출의 부담은 지자체에서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자치구의 사회복지비 예산 비중은 이미 53.5%에 이르렀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가 경직성 지출로 예산을 대부분 소진하고 나면 지역개발 등 다른 분야에 쓸 돈이 없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주민의 몫이 되며 지자체 간 불균형도 심해진다.

써야 할 곳에만 써도 재정이 부족하니 정부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재정이 부족하다고 해서, 재정 배분 방식의 변경만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벗어나긴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더 근본적인 국가사회 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쓰나미처럼 한국을 덮쳤다면, 저성장과 경직성 지출 증가 그리고 나랏빚 증가는 마치 한여름 가뭄처럼 나라를 옥죄어올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산업·공공부문 개혁을 했다. 이제 그러한 비상한 마음으로 다시 개혁하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조세의 정의와 형평성을 제대로 확립하고, 120조 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 사업을 효율화하며, 중앙과 지방 규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경제에 활력을 제대로 불어넣는 일 등이 개혁 의제에 포함돼야 한다.

경직성 지출로 나랏빚이 늘어가는 상황을 오히려 개혁과 체질 개선의 전기(轉機)로 삼는 국가적 비전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통일 문제와 함께 대한민국의 남은 21세기를 좌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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