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월부로 한국과 러시아 간의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됐다. 이제 항공권과 여권만 있으면 한국인은 언제든 러시아를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행지로서의 러시아는 일반인들에겐 낯선 땅인 것이 사실이다. 두꺼운 제복을 입은 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 우울한 회색빛 도시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의 시베리아의 나라. 인터넷에 떠도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과 풍문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지난번 대한항공 KE923편 모스크바 비행에 앞서 나는 시내를 구석구석을 둘러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모니터 창이 아닌 내 두 눈으로 진짜 러시아를 만나 보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함께한 동료들 모두 초행인지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붉은 광장에 갈 수 있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던 중 저 멀리 두꺼운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러시아어로 ‘붉은 광장’이라 적은 쪽지를 보여주었다. 역무원은 웃음을 보이며 친절하게 왕복 티켓 끊는 것을 도와줬다. 얼굴에 홍조까지 띠는 수줍은 모습의 역무원을 보고 있자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듣던 대로 러시아에는 영어 간판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핸드폰의 지도 검색 서비스를 활용하면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테트리스 게임 배경으로 익숙한 성 바실리 성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이반 4세가 몽골의 카잔칸에게 승리한 기념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건물을 다른 나라에 짓지 못하게 하려는 욕심에 설계자들을 눈멀게 했다는 조금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반적인 서양성당과 달리 탑의 모양과 그 높이가 조금씩 달라 불규칙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길게 굼 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궁전인가 착각할 정도로 크고 웅장한 모습으로 마치 정원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방문객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곰처럼 덩치가 큰 러시아 아저씨들이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는 모습에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 사 먹어 보았는데 젤라토처럼 진한 맛에 향도 좋아 어른도 반할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료시카’라는 기념품을 구입했다. 전체적으로 둥근 타원형 모양 인형의 상하를 분리하면 조금 더 작은 크기의 인형이 안에 숨어있다. 인형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더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인형이 나와 재미를 더하는 러시아의 공예품이다. 문득 러시아가 마트료시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말을 걸어보면 친절하고 조금은 수줍었던 사람들, 얼핏 회색 동토의 도시가 떠오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성당과 화려한 모습의 건축물들. 모니터로는 알 수 없었던 러시아의 진짜 매력은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의 발길과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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