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통해 임기를 보장받은 ‘권력’이 다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지지도가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정권이 인기를 잃으면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교체하는 방법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한다. 우리 같은 대통령제에서는 탄핵이라는 방법이 있지만 아주 비상한 상황에서만 사용될 뿐 정해진 임기 내에 교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5공 청산과 ‘1노(盧) 3김(金)’의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중간평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치열한 선거전 막바지에 내놓은 공약이기도 했다. 중간평가를 내걸었지만 내심 불신임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 당시 김대중(DJ) 평민당 총재다. 김 총재는 “중간평가를 국민투표로 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인데 어떻게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느냐?”고 주장했고, 이는 노 전 대통령에게는 중간평가를 철회할 수 있는 명분이었다. 결국 중간평가는 이뤄지지 않았고, 1990년 노 전 대통령은 그런 DJ만 뺀 ‘3당 합당’으로 정국을 돌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재신임 카드로 위기를 넘겼다. 2003년 10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 비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등 측근 비리가 불거지자 “의혹이 있다면 과감히 몸을 던져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재신임 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했다. 대통령이 임기를 볼모로 재신임 카드를 꺼내 들자 여론은 국정혼란을 우려해 재신임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국민투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를 볼모로 내걸었던 재신임 카드는 실제 이뤄지지 않고도 이렇게 의도한 정치적 목적을 다 이뤘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재신임을 들고나왔다. 그동안 야당 역사를 보면 선거에 패배하면 당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전례가 많았는데 이렇게 사퇴보다 재신임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재신임 투표가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유신헌법 투표에 빗대 얘기한 것이 논란은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통치자는 누가 통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듯이 인기도, 리더십도 바닥을 보인 당 대표는 누가 통제할 것인가. 대표를 선출한 당원들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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