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 사회부 차장

분양대행업체 대표와 유착돼 수억 원의 뇌물성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기춘 의원의 사례는 비리에 연루된 지역구 국회의원의 처신과 동료 의원들의 빗나간 의리 등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등 요직을 거친 3선의 박 의원은 문제의 업자로부터 아들 결혼축의금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현금으로만 2억7000만 원을 수수했고, 이 밖에도 수천만 원 상당의 명품 시계 8점과 고급 안마의자, 명품 가방 등 모두 3억5800만 원어치를 받아 챙긴 혐의로 이달 4일 구속 기소됐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박 의원이 탈당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음에도 국토교통위원장직을 사임하지 않아 친정인 새정치연합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야당의 잔치인 국정감사가 벌어지는데 자당 몫 국회 상임위원장을 공석으로 둬야 하는 새정치연합은 다각도로 박 의원을 설득하고 있지만, 막무가내식 버티기에 정치적 무능력만 드러내고 있다.

박 의원이 검찰에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할 때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직전까지도 검찰에 출두하면서 무죄를 주장하며 정치탄압 운운하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에 익숙한 국민에게 박 의원의 처신은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수감되는 날까지 결백을 주장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대비돼 ‘칭송’받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8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비밀투표에 부쳐진 박 의원 체포동의안은 참석 의원 236명 중 찬성 137명, 반대 89명으로 통과됐다. 일반 국민은 개인 비리가 명백한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기껏 58% 찬성률로 통과되느냐고 힐난할지 몰라도, 국회의원들의 동료 의원 감싸기를 숱하게 봐온 기자의 입장에선 의외로 높은 찬성률이었다.

국회 표결 직전 지인들로부터 ‘박기춘 체포동의안 가결 여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박 의원이 혐의를 시인했음에도 체포동의안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국회와 정당을 오래 출입하면서 의원들의 의리, 동업자 정신을 많이 봐온 탓이다. 1년 전쯤인 지난해 8월 19일 새정치연합은 심야에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격론 끝에 다음 날 임시국회 소집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다. 입법로비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재윤·신계륜·신학용 의원에게 불체포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방탄국회 개회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의총장에 있었던 인사는 다음 날 기자에게 “우리 당에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의원들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초선 의원들이 방탄국회는 안 된다고 격렬히 저항하는 와중에 다선 중진 의원 상당수가 임시국회 소집안을 강력히 밀어붙인 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방탄국회 소집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중진 의원 일부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때는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이들은 입법 로비를 받은 의원들이 검찰에 불려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모양이다. 국회의원들의 남다른 의리는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동물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sdgim@munhwa.com
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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