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 연일 야당 국회의원들의 공세를 받았다. 야당은 악화하는 경제 상황을 근거로 들이댔지만, 그를 표적으로 삼은 정치적 의도도 커 보였다. 최 부총리가 “경제파탄 주범이다, 재벌 앞잡이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나. 인격모독을 하는 발언들은 자제해 달라”고 항변하는 데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모든 데 정치적 의도가 전제되는 게 당연하더라도 국감만큼은 국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사실(fact)’이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여기서도 정치적 이득이 먼저다. 그 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개선의 기미가 없고, 매해 구태가 반복된다. 마치 고장 난 탱크처럼 관성에 충실하게 된다.
그건 인간 사유가 지닌 특성 중 하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어도,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로만 ‘편집’한다. 수많은 사실과 정보를 자신의 편익에 맞게 취사선택한다. 속셈 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허명공평(虛明公平)의 자세는 없다. 그런 개인이 모이면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가 나타난다. 그게 국감장의 풍경이다.
최 부총리를 위해 변명하자는 게 아니다. ‘정보가 자산’인 시대에도 선입견과 의도가 전제되면 고장 난 사고의 관성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정부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처한 경제 현실을 몇 가지 지표만 놓고 “잘 대처하고 있다”거나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되뇔 시점이 아니다. 그릇된 사고의 관성은 평생 고치기 힘든 고질(痼疾)이다. 이와는 정반대 방향의 정보이용법이 있다. 이른바 빅데이터 독법(讀法)이다. 산더미 같은 정보 속에서 나에게 유익한 ‘신호’를 알아채는 방법이다. 대단한 비법이 있을 것 같지만, 매우 간단하다. 그 정보의 진수를 알아내려면 열린 자세로 신호를 보고, 모든 행위는 증거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통계·예측 전문가인 네이트 실버가 저서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 2014)’에서 강조한 말이다.
예측이 실패하는 이유는 데이터가 부족해서가 아니란다. 정보가 많다고 예측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많아지면 오히려 소음의 양도 늘어난다. 그래서 데이터는 결과를 알려주는 사신(使臣)이면서, 때론 실패로 이끄는 사신(死神)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쓸모있는 정보를 가려내려면 신호에서 소음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데이터를 통한 추론(reasoning)이다. “데이터를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는 독단을 버려야 한다”는 게 실버의 논지다. 독단에 가까운 예측으로 큰일을 자초했던 사례가 허다하다. 우리가 겪은 경제위기들의 대부분은 불감당의 돌발 악재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예측하고 진단해 왔던 관성 때문이지 않은가.
국민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알아채는 게 정치인이 지녀야 할 독법이라면, 시장의 신호를 선입견 없이 해석하는 것은 정책 당국자의 자세여야 한다. 사실은 뒷전이고, 속셈만 앞서면 나라가 흔들린다.
osh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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