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제20대 총선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선거구획정위는 지역구 숫자를 244∼249개 범위로 결정했다. 획정위의 안(案)에 대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1일 ‘비현실적인 안’이라고 평가했다. 국회는 앞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구 의원 총 정수(定數)와 비례대표 정수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통과에 논란이 예상된다.

의원 숫자를 포함한 최선의 선거 제도에 대한 학계의 합의는 없다. 피파 노리스 미 하버드대 교수도 “단일 최선의 선거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는, 프랑스 11만, 호주 14만, 독일 14만, 일본 26만, 미국은 69만 명 정도다. 한국은 17만 명으로 중간쯤 된다. 또, 1948년 제헌국회 의원이 200명이었고, 당시 인구가 약 2000만 명이었음을 고려하면 지금 5150만 인구에 국회의원 300명은 많지 않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수에 대한 결정권은 선거구획정위, 정당(국회), 시민단체에 있지 않다. 국민에게 있다. 그런데 의원 정수 결정에서 국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300명도 문제가 많으니 대폭 줄이기를 원하는데, 정치권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숫자 더하고 빼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이 빠진 의원 정수 결정은 무효다. 국민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민생(民生)은 뒷전에 두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특권 집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300명도 많은데 더 많으면 더 문제가 많은 국회가 될 것으로 본다. 결국, 의원 정수 결정은 인구수, 지역주의 극복, 사표(死票) 방지 등 그 어떤 기준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 국회의원 정수 결정에는 고려해야 할 2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대로 현행 300명보다 대폭 줄여야 한다.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은 항상 압도적이었다. 지난 7월 28∼30일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 정수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6명에 가까운 57%가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현재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과 관련해서는 37%가 지역구 의원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비례대표 의원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비례대표제가 본래의 효과를 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비례대표 의원은 정당 지도부가 결정한 리스트 가운데서 결정되기 때문에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선택이 아니므로 인지성(identifiability)과 책임성에서 불일치가 발생한다. 국민은 누구를 찍는지 모르고, 비례대표 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당의 실력자에게 충성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야를 넘어 지적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비례대표가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아 왔다”고 했고, 조경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비례대표제가 한국 정치사에서 공천장사, 계파정치의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됐음을 비판했다. 현행 비례대표제의 더 큰 문제점은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의 이념적 편향성이다. 국민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이석기 전 의원으로 끝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또 상당수 비례대표 초선 의원들이 반(反)시장적 투표 성향을 보이고 있음은 자유경제원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그렇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국회의원 정수 결정은 간단하다. 공천 장사에 이용되거나 계파 세력 확대에 사용되는 등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지 않도록 비례대표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지역구 국회의원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의원 정수를 줄일 수 있다. 비례대표 제도를 ‘사표’ 방지를 위한 선진적 선거 제도라고 강변하는 주장도 있지만, 비례대표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영국과 미국 모두 선진 의회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다.

국민은 ‘숫자 많은 국회’가 아니라, ‘일하는 국회’를 원한다. 의원 정수 축소는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메가톤급 소재다. ‘저질 국정감사’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성과도 없는 제19대 국회가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자세로 정치 개혁을 이뤄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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