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지난 주말 경북 경주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펼쳐졌다. ‘제1회 신라 임금 이발하는 날’. 첨성대 옆 신라 왕릉 벌초(伐草)에 시민 등 1212명이 참여해 ‘단일 장소 최다 인원 벌초’ 신기록을 세워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공식기록을 인증받았다. 조상 묘와 벌초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애증은 예로부터 남다르다.
조상 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가꾸는 풍속인 벌초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묘제(墓祭)를 중시한 점을 보면,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때부터 조상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가 불효로 인식돼 왔다. 오늘날 벌초는 집안의 중요한 연례행사로, 흩어져 살던 형제·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을 기리고 덕담을 나누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외지에 나간 지 오래된 자손들 중에는 벌초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번거롭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또 벌초하다 벌에 쏘여 사망하는가 하면 예초기에 부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 때문에 벌초를 농협 등에 맡기는 사람도 늘어나고, 아예 산소를 인조잔디로 바꾸거나 묘와 주변을 시멘트로 덮어버린 콘크리트묘도 등장했다.
최근 몇 해 사이 고인을 땅에 묻는 매장(埋葬) 대신 화장(火葬)을 선택하는 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화장률이 2001년 38.8%에서 지난해 78.8%로 크게 높아졌다. 이 같은 추세라면 5년 후에는 90%를 훌쩍 넘어서고 10년 후엔 대부분 가구가 화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조상묘를 개장(改葬)해 화장한 후 납골당 등에 모시는 사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한시적 매장제도’가 시행되면 화장 비율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시적 매장제도란 2001년 이후 설치된 분묘에 대해 설치 기간을 15년으로 제한하고, 3회까지만 연장을 허용하는 제도다. 최장 60년간의 사용 기한이 끝나면 1년 이내에 해당 분묘를 철거해야 한다. 기한 내 분묘를 없애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조상과 수확에 감사드리던 추석은 고유의 취지보다 ‘연휴’의 의미가 더 커졌다. 벌초에도 장묘문화 변화에 따라 낙조(落照)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주의 벌초 신기록은 좋든 싫든 그런 변화에 대한 이벤트로 비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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