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 체육부장

한국스포츠에서 합숙은 일종의 전통이다. 단기간에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기에 합숙은 아주 오래전부터 ‘애용’돼 왔다. 합숙소에 거주하며 운동하면 집과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해 훈련량을 늘릴 수 있다. 특히 단체 종목의 경우엔 합숙으로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조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도자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합숙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선후배, 그리고 지도자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위계질서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구타가 자행되곤 했다. 초·중·고교에선 구타의 정도가 심해 운동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여학교 팀의 경우엔 지도자와 함께 숙소에 머물다 성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예도 있었다.

합숙은 학부모들에게도 큰 부담을 안긴다. 합숙 경비 중 상당 부분을 학부모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고교생 농구선수의 학부모는 월 70만 원 정도의 ‘회비’를 내는데, 합숙을 하게 되면 100만 원 안팎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합숙의 폐단을 막고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2008년 초교 운동부의 합숙을, 2010년 중학 운동부의 합숙을 금지했으며 고교의 경우 조건부로 합숙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합숙이 성행하고 있다고 대한체육회는 판단하고 있다. 학생선수의 집 주소를 학교에서 먼 곳으로 옮겨 기숙사 또는 합숙소에 머물게 하는 등 이런저런 편법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운동부는 합숙 금지 대상이 아니다. 국내 12개 대학 남자농구부는 모두 합숙을 한다. 지난 8일 프로농구 선수 11명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1명 중 특정 대학 출신이 여럿 눈에 띄는데 대학 재학 시절 합숙하면서 ‘단체’로 스포츠 도박에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삐뚤어진 합숙 문화가 빚은 ‘참사’ 중의 하나다.

그런데 프로도 합숙을 한다. 대표적인 게 농구다. 국내 프로농구단은 남녀 통틀어 16개다. 한국농구연맹(KBL)에 10개 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에 6개 팀이 있는데 모두 합숙을 한다. 명색이 프로이고, 또 선수생명이 길어지면서 기혼자가 많아졌는데도 여전히 프로농구단은 남녀 모두 숙소에서 함께 밥을 먹고, 운동하고, 잠을 잔다. 코칭스태프 역시 구단 숙소에 머문다.

성인 20여 명을 한곳에 모아 합숙하는 건 경기력 극대화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통제’하기에 편하다. 코칭스태프가 선수 개개인의 사생활을 뻔히 들여다보고,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음주나 흡연 등을 감시할 수 있다. 구단, 감독이 원하는 대로 선수단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선수는 독립성을 지닌 인격체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스포츠 조직 구조의 정점에 있는 프로부터 바뀌어야 한다. 프로가 합숙을 유지하는 한 ‘군대식’ 학교 운동부 합숙이 사라지길 기대할 순 없다.

jhlee@munhwa.com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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