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과 서방의 제재,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 동중국해에서의 중·일 경쟁 등 최근 국제정치는 주요국 간 ‘상호의존의 극대화’보다는 ‘지정학(地政學)의 귀환’이라고 할 만큼 구시대적 권력정치가 부활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지난 25일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큰 틀에서 협력을 지향해 나가되 지정학적 사안에 관해선 경쟁을 이어갈 것임을 확실히 했다.
두 정상은 사이버 안보·테러·경제 및 무역 확대, 기후변화, 이란 핵 문제 등 범세계적 이슈에 관해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히, 양국이 고위급 사이버 안보 대화를 개최하고 사이버 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상당한 진전이었다. 그리고 중국이 현재 7개 도시에서 시범 도입 중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2017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은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미·중 양국의 협조가 구체화한 사례다.
그러나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와 인권 문제에 관해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어디에서든 항해하고 비행하며 작전을 펼 것”이라 했고, 시 주석은 “예로부터 남중국해의 섬들은 중국의 영토로, 우리는 우리의 영토적 권리와 합법적이고 정당한 해양의 권익을 보전할 권리가 있다. (인공섬 건설은) 어떤 국가를 겨냥하거나 영향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고 맞받았다. 인권 문제에 관해서도 양국은 평행선을 달렸다.
중국 시 주석의 방미 목적 중 하나는 중국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불식이었다. 따라서 그는 범세계적 이슈와 경제·무역 문제에 관해 미국과 협력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도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사안에 관해선 분명한 선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지속적 순항 여부는 중국 경제와도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의 ‘불필요한’ 공세를 차단하는 것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관심은 북핵 문제에 집중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유엔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요구한다”고 했고, 시 주석은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그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안보리 결의의 단순한 이행을 넘어 결의에 위배되는 행동에 중국이 반대한다고 함으로써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시 주석은 “모든 관련 당사국이 동북아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제재 이상의 조치’(more than sanctions)를 언급해 초강경 조치를 시사한 최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견제했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한 2건의 발표문에 시 주석의 북핵(北核) 발언을 고스란히 뺐다.
중국의 이러한 ‘모호한’ 모습을 보고 북한 김정은은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해도 되겠다는 오판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실험 같은 전략 도발을 할 경우 취할 조치에 관해 한·미·중이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북한이 도발 대신 대화에 나선다면 핵 문제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비롯한 포괄적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도 전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한반도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에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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