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그 어느 해보다 넉넉하고 편안했던 것 같다. 과거 추석 때면 불청객처럼 찾아왔던 태풍이나 대형 사고가 올해는 없었다. 몇 주째 계속된 청명한 가을 하늘은 그동안 온갖 세파에 시달려온 국민의 우울한 기분을 잠시나마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메르스 사태로 얼어붙었던 소비도 추석 전에 살아났다. 백화점과 재래시장 매출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크게 늘고 자동차 판매도 9월 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정도 늘었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은행 소비자심리지수도 지난 6월을 고비로 석 달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개혁 문제에 대타협을 했다는 소식이나 대기업들이 앞다퉈 하반기에는 신규 채용 규모를 큰 폭으로 늘리겠다고 한 발표도 그동안 자녀 취업 문제로 애를 태워온 부모나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은 청년 모두에게 한 줄기 희망과 설렘을 갖게 하는 굿(good) 뉴스였다.
올해도 추석을 맞아 민족 대이동이 이어졌지만, 추석 풍속도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500만에 이르는 1인 싱글 가구 등 2인 이하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50%에 육박함에 따라 추석 연휴 중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3박4일 연휴 중 하루만 고향 집에 묵고 떠나는 가구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옛날처럼 대가족이 추석 연휴에 모여 송편을 빚고 명절 음식을 함께 준비하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짧은 가족 간 대화 시간도 TV나 스마트폰에 뺏겨버렸다.
이제 다시 바쁜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연휴 중 잠시 잊고 있었던 전·월세 문제, 취업 문제, 가계 빚 문제 등 먹고사는 문제들과 다시 힘겹게 씨름해야 한다. 특히, 장사가 안 돼 매일 자금난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에게는 다시 힘든 생존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연휴 중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곳은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다. 여야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로 내년 총선 경선에 불을 지폈고, 예비후보들은 지난 며칠간 지역 현장을 누비며 표심을 읽었겠지만, 일반 국민은 공허한 말장난이나 눈도장보다는 누가, 그리고 어느 당이 이 문제를 해결할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지에만 관심이 더 많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권고로 기업·금융·공공·노동 등 4대 개혁을 추진한 이후로 15년간 제대로 된 구조개혁이 없어 곳곳에 비효율과 저생산성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 그런 만큼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구조개혁을 통해 낡고 경쟁력을 상실한 시스템과 관행을 혁신해야 한다. 이제 웬만한 국민이면 공짜 복지는 없고 구조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새로운 일자리도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추석에 취업 문제 때문에 귀성을 포기한 20대 ‘미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얼마 전 발표된 대기업들의 청년취업 확대 약속이 일회성 공약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려면 정치권이 앞장서 노사정이 어렵게 타협한 노동개혁 과제에 대한 후속 입법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또한, 추석 대목을 시작으로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소비 회복세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추석에도 자녀·손주 보기가 더 어려운, 우울한 추석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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