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현재 분위기를 감안하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안심공천제)는 폐기되거나 최소한 원형을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대표로서는 야당 측과 어렵게 이룬 합의가 국회법 개정안에 이어 또다시 청와대에 의해 무산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공천개혁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것은 적절한 선택이다. 사실 특정 정치인에 의해 공천이 좌우되고,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구가 전체 지역구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공천개혁은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할 정치개혁 과제다.
그러나 김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우선, 김 대표는 안심공천제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역선택을 통한 민의 왜곡이나 조직선거 우려 등 청와대 측이 제기한 안심공천제의 문제점은 차라리 감내할 수 있는 후유증일 수 있다. 안심공천제의 치명적 문제점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대체하는 변형된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선거의 4대 원칙 중 보통선거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해당 지역 유권자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한다. 그러나 안심공천제의 경우 통신사가 특정 지역의 여론조사 참여 대상자를 임의로 선정한다. 통신사에 의해 선정되지 않은 유권자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천에 대한 의사표시를 원천 봉쇄당한다. 결국 안심공천제는 김 대표의 주장과 달리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통신사에 넘겨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둘째, 김 대표 스스로 정치적 손익계산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친박(친박근혜)계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비박(비박근혜)계가 다수인 당내 권력 구도를 20대 국회에서도 유지해 대권을 도모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내세워 당 대표에 당선됐고 다수 의원이 김 대표에게 ‘현역에게 유리한 공천방식’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김 대표는 수차례 공언했듯이 대표로서의 공천 관련 기득권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더불어 향후 당내 공천 논의 과정에 개입하거나 구체적인 방법론을 주장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김 대표 의도와 상관없이 구체적 방법론은 오해를 부를 수 있고 그 같은 오해는 ‘낙하산 공천’을 기대하는 세력들에게 공천개혁 명분 자체에 시비를 거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늘 자랑해오던 풍부한 정치경륜에 걸맞게 여권 내부의 권력 구도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점진적인 개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 이상의 시멘트 같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여권 내 최대 실세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김 대표보다 더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당연히 공천에 대한 지분이 있다. 따라서 친박계의 지분 요구를 수용하지 않더라도 공천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지분에 걸맞은 예우를 해야 한다. 특히 낙하산 공천은 원천 봉쇄하되 지역구 상황이나 상대 당 후보, 능력있는 정치신인의 영입 공간 등을 감안해 전략성 공천도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당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유럽 선진국들도 정당정치의 개방성을 확대하기 위해 오픈프라이머리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지만 당원 의견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절충형을 취하고 있다. 어떤 제도라도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 지고지순한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또는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줄 아는 정치인이 진짜 훌륭한 정치인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인 정치경륜을 십분 활용해 공천개혁을 이룬다면 우리 정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김 대표의 정치적 위상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긴박한 동북아 국제정세나 경제 상황을 외면한 채 청와대·친박계와 김 대표 측이 공천방식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인다면 국민은 여권 전체를 외면할 수 있다. 청와대 인사들도 총선 출마 등 개인적인 정치적 진로를 염두에 두고 박 대통령의 의중을 혼란스럽게 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공천을 둘러싼 대의(大義)와 현실 사이에서 절묘한 조화를 통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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