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침 만들려 하지만
노동계·야권 반발에 막혀
기존 ‘대법원 판결’에선
근무성적 현저히 나쁘고
개선 안 되면 ‘정당 해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지난 9월 15일 대타협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핵심 쟁점들에 대한 후속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지만, 대부분 쟁점에 대한 노사정의 의견차는 여전하다. 후속 과제 중에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은 의제는 ‘저성과자 해고 요건’에 대한 정부 지침 마련이다. 9·15 대타협 당시 이에 대한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노사정은 ‘노사정이 충분한 협의를 통해 지침을 마련한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절충안을 합의문에 넣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여전히 “공정한 해고란 없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노동계와 야권을 중심으로 ‘저성과자 해고 지침=쉬운 해고’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실제 기업 현장에서 저성과자 해고를 둘러싼 혼란이 적지 않은 만큼 행정지침을 통한 불확실성 해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근로계약 해지 기준·절차 명확화는 노사 및 전문가 의견 수렴을 통해 조속히 시행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쉬운 해고’ 논란과 관련해선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정부가 지침을 마련하는 데 지나지 않아 쉬운 해고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 마련은 정말 쉬운 해고로 가는 길인 걸까. 대법원 판례를 통해 알아본다.
저성과자 해고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한 것과 달리, 이에 대한 법원 판례는 많지 않다. 근로기준법에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비위 사실 적발 등을 통한 징계해고, 경영상 어려움에 따른 정리해고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대표적인 대법원 판결 6개를 살펴보면, 저성과자 해고의 부당함과 정당함을 가르는 일정한 기준을 파악할 수 있다. 판례에 따르면 사업주가 저성과를 이유로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는 없다. 정당한 해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정한 인사평가 기준(상대평가여서는 안 됨) △실제 공정한 인사평가 시행 △재교육 등 업무능력 향상 기회 부여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부당한 해고=지난 2009년 한국허치슨터미널㈜이 36명의 저성과자를 해고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2012년 5월 해고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해고 대상 근로자에게 과도할 정도로 낮은 근무평정을 주고, 해고 대상자가 아닌 근로자는 근무평정 세부항목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는데도 근무태도 평가에서 만점을 주는 등 인사고과에 공정성과 합리성이 모자란다는 점이 판결 이유였다. 지난 6월 대법원은 ㈜KT가 민영화 이후 인건비 지출을 낮추기 위해 매년 전체 직원 5%에 해당하는 부진인력 관리를 하면서 1470명 규모의 퇴출 목표를 세웠다는 부분을 들어 저성과자에 대한 인사고과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퇴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인력 관리 책임자에게 징계·보직 미부여 조치를 하는 등 인사고과 격차가 특정 집단을 퇴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한국씨티은행이 저성과를 이유로 시용(試用)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본계약 체결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2006년 부당해고로 판결했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저성과자 해고 기준을 마련했고, 저성과자 등급에 해당하는 직원을 할당했으며 직원마다 평정자가 달라 객관적인 인사고과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 취지였다.
◇정당한 해고=반면 대법원은 1978년 방송사 PD로 입사해 최근 2년 동안 인사고과 최하위 등급을 2회 이상 받은 A 씨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인사고과가 절대평가였고, 저성과로 수차례 감봉이나 정직을 받은 이후에도 연속해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 업무수행 능력 부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1983년 보험회사에 입사한 영업부장 B 씨에 대해서도 정당한 판결이라고 봤다. B 씨는 보험계약 실적이 월평균 목표액의 10.1%밖에 안 돼 견책 처분을 받은 후에도 보험계약 실적이 목표의 21.4%, 23.1%에 그쳐 또다시 징계를 받았다. B 씨의 실적은 B 씨보다 하위직급인 과장급 직원의 평균 실적의 6%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회사는 B 씨를 타부서로 이동시키려고 했으나 하위직 직원들의 기피가 심각해 1988년 B 씨를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한 공공기관의 울산지사에서 부서장급으로 일하던 D 씨는 2008년 인사고과에서 94명 부서장 중 93위에 해당하는 저성과를 보였다. 이후 보직대기자 역량강화 교육을 받고 현업에 복귀했으나, 저성과 간부직원 6명으로 구성된 팀에서도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2009년 이뤄진 인사고과에서 역시 전체 직원 1026명 중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D 씨는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한 역량강화 교육에 다시 참가했으나, 기준점수(60점) 미달로 미수료됐다. 이에 공단은 D 씨를 직권면직했다. 대법원은 2013년 “현저하게 근무성적이 나쁜 것이 증명될 뿐만 아니라 재교육, 업무복귀 기회를 충분히 줬는데도 업무능력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정당한 해고라고 본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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