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기구독자가 30여명 수준
종이 잡지 포함해 웹포털 구상중
1970~ 80년대 한국문학 중심축
‘포스트모더니즘’ 처음으로 소개
이문열·한수산 등 유명작가 무대
민음사가 40년 역사의 계간지 ‘세계의 문학’을 폐간한다.
박근섭 민음사 대표는 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는 11월 말 내놓는 2015년 겨울호(158호)를 끝으로 ‘세계의 문학’ 발행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계절마다 똑같은 형식의 문예지들이 수십 종씩 쏟아지는 상황에서 ‘세계의 문학’은 생명력을 다했다고 판단했다”며 “내부적으로 새 이름의 차별화된 문학 콘텐츠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지난 1976년 3월 창간한 ‘세계의 문학’은 1970∼1980년대 창비의 ‘창작과 비평’, 문학과지성사(문지)의 ‘문학과 지성’(현 ‘문학과 사회’)과 함께 한국문학을 이끄는 중심축을 구성했다. ‘창작과 비평’이 민족·민중주의, ‘문학과 지성’이 자유·시민주의에 바탕을 뒀다면 ‘세계의 문학’은 인문주의 정신의 구현이 목표였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 세계 문학의 한국화’를 기치로 국내 문학 작품은 물론 해외 문학·철학이론과 작가, 작품을 선구적으로 소개했다.
초대 편집위원을 맡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10년 가까이 잡지를 운영하면서 국내에 생소했던 개념인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구조주의’ 등을 처음 알렸다. 1976년 겨울호부터 10년간 연재된 독일 비평가 에이리 아우얼바하의 ‘미메시스’는 국내 인문학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으로 대표되는 제3세계 문학과 함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국내에 소개된 것도 ‘세계의 문학’을 통해서였다.
‘세계의 문학’의 지원을 바탕으로 1977년 제정된 ‘오늘의 작가상’은 많은 신인 작가들이 탐내는 상이었다. 소설가 이문열·강석경·한수산·박영한·박일문 등이 이 상으로 문단에 이름을 각인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은 매해 화제가 됐고, 특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등은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작품이 지면을 채운 ‘세계의 문학’도 더불어 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문예지 시장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가운데 ‘세계의 문학’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민음사가 세계 문학 전집 등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지분’을 많이 잃은 것도 쇠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 사이 문학동네가 등장해 창비, 문지와 함께 한국문학의 빅3 출판사로 자리잡았다. 연재 장편이 단행본으로 출간돼 잡지 운영의 손해를 벌충하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면서 민음사는 ‘세계의 문학’을 발행하는 데 경제적 부담을 느껴왔다. 최근 정기 구독자 수는 30여 명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음사는 ‘세계의 문학’을 대신할 새 ‘그릇’으로 종이 잡지를 포함해 웹 포털 형식까지 고려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출시가 목표다. 박 대표는 “최근 문학권력 이야기가 나올 만큼 문예지의 역할과 기능이 변질돼 있다”며 “한국문학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문학장’을 만들려 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로 34년째를 맞는 김수영문학상도 개편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공모전 형식의 이 상은 과거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등 명시집을 만들어냈지만, 현재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앞서 민음사는 지난해 38년 전통의 ‘오늘의 작가상’을 전면 개편했다. 신인 장편 공모전으로 운영되던 상은 기존 출간된 작품 중 독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수상작을 뽑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당시 박맹호 회장은 “출판사에서 이득을 취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며 “한국 문학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민음사 대표를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한국문학계 구조조정의 시작으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장 대표는 “비슷비슷한 작가가 비슷비슷한 문예지를 오가며 작품을 연재하는 몰개성의 문학 시대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과도하게 한 곳에 매몰됐던 문학 자본의 관심이 다양한 장르와 형태로 분화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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