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 사회부 차장

20년도 더 전인 햇병아리 기자 시절 일선 세무공무원인 지인을 우연히 노상에서 만나 시장통 호프집에서 한잔하게 됐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섞어 술잔을 나누는데 지인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사업하는 사람들로부터 걸려온 민원성 전화였다. 급기야 우리가 마시고 있던 그 술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얼핏 보기에 50대는 넘어 보이는 그 사람이 20대 후반인 지인에게 거의 90도 꺾은 절을 하고 돌아간 뒤 “법대로 하면 될 텐데, 왜 저렇게 전화하고 찾아오느냐”고 했더니 그 지인의 대답은 이랬다. “세법(稅法)이란 게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 어떤 경우에 이렇게 적용하면 세금을 1억 원 부과할 수 있지만, 저렇게 적용하면 500만 원 정도 물리고 말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딱히 불법이랄 순 없고, 현장 세무공무원에게 상당한 재량이 있다.” 오래전 유행했던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부채가 넘어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해도 된다는 공무수행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최근 검사 마음대로 무거운 형량을 구형해도 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제3조 1항이 위헌 판정을 받았을 때 20여 년 전 ‘부채도사’처럼 보였던 세무공무원의 발언이 생각났다.

9월 24일 헌법재판소가 폭처법의 특수폭행 등 규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형사특별법에 대한 전면적인 체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형법 제261조(특수폭행), 제284조(특수협박), 제369조(특수손괴)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형법상의 폭행죄, 협박죄, 재물손괴죄를 범한 사람에 대한 가중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 법정형이 각각 5년(특수협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돼 있다. 문제는 폭처법 제3조 1항이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형법상의 폭행죄, 협박죄, 재물손괴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유기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법률의 조항에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폭처법으로 엮이면 행위의 경중에 관계없이 벌금형이 제외되고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형량에 큰 차이가 나는 법 적용을 검사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게 함으로써 피의자의 자백을 유도하거나 상소를 포기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가 ‘자백하지 않으면 폭처법으로 걸어 가중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형법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도록 한 과잉 입법 때문이다.

위헌 소지가 많아 시급한 개정 대상으로 지적되고 있는 형사특별법은 폭처법을 비롯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법) 등이다. 독재권력이 통치의 용이함을 위해, 또는 국회의원들이 흉악범죄 발생 때마다 포퓰리즘으로 대응한 결과, 대한민국은 형사특별법 천국이란 오명을 얻고 있다. 차제에 헌법에 위배되고 법체계를 어지럽히는 형사특별법의 폐지나 대폭 개정 등 전면적인 체계정비를 시작해야 한다. sdgim@munhwa.com
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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