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상의와 하의 등을 원단으로 만든 직소백(zigsaw bag·왼쪽 위)과 가죽 재킷을 재활용해 만든 백팩(〃 아래), 오른쪽은 파우치.
파크랜드서 재고 기증받아 파우치·백팩 등으로 재활용 생산비 줄이고 환경도 살려
공공기관·학교 납품 이어 올해는 자체브랜드 내놓고 의류점 등 통해 일반 판매
대형 양복 제조사로부터 재고 물량을 넘겨받아 멋진 디자인의 재활용 가방으로 재탄생시키고, 그 과정에서 경력단절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에코인블랭크(Ecoinblank)’는 친환경 생활 방식이라는 사업모델을 구축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기여하는 것을 사회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
신종석(사진) 에코인블랭크 대표는 “친환경이라는 관점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싶었고, 사회적 가치와 미션을 실현하기 위해 재활용 가방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2년 설립된 에코인블랭크의 초창기 사업 아이템은 친환경 웨딩이었다. 현재도 친환경 웨딩 사업을 하고 있지만, 친환경 웨딩만으로는 더 많은 사회 구성원과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나누기 어렵다고 판단해 제조업 진출을 모색했다.
자본금이 적고 규모도 영세한 사회적기업인만큼 재고가 많이 쌓이거나 생산 공정이 복잡하면 곤란했다. 신 대표는 “사이즈가 여러 개인 옷이나 신발 등보다는 가방을 생산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며 “새로운 원단이 아니라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버려진 원단을 찾아내 생산 비용도 절감하고 우리 기업의 사회적 목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에코인블랭크는 비닐도 가격표도 뜯기지 않은 채 포장 그대로 버려지는 재고가 한 의류 기업당 연간 40억 원에 달한다는 언론 보도에 주목했다. 중고차 처리 시 안전벨트는 쓰임이 없어 재활용 없이 그대로 버려진다는 기사도 뇌리에 남았다. 신 대표는 “이게 정말 아깝고, 그대로 버려질 바에야 우리가 활용하면 지구에 더 좋을 거라고 봤다”며 “그 길로 양복업체인 파크랜드 본사를 찾아가 재고를 받아 가방을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파크랜드는 재고를 기증해달라는 에코인블랭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재고 처리 비용을 일정 부분 줄일 수 있고, 환경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했다. 에코인블랭크는 부산에 위치한 파크랜드 물류창고에 가서 정기적으로 재고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에코인블랭크에 원단을 기부하는 또 다른 단체는 ‘열린옷장’이라는 자선단체다. 열린옷장은 시민들로부터 정장을 기부받아 취업준비생에게 저렴하게 대여해 주는 일을 한다. 많은 시민이 정장을 기부하는 데 이 중에선 입기 어려운 정장도 여러 벌이 나온다. 에코인블랭크는 열린옷장으로부터 다시 버려지게 된 정장을 기부받는다. 기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에코인블랭크는 기부자에게 정장 원단으로 만든 작은 파우치를 증정하기도 한다. 신 대표는 “어떤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원단을 받는지 제품에 모두 표시를 하고 있다”며 “라벨을 만들어 파크랜드나, 열린옷장의 로고를 넣어주면 홍보 효과도 있고, 소비자들도 자신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니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에코인블랭크가 생산하는 가방은 전국 파크랜드 직영점 22곳에 납품되고 있다. 2012년 창업한 뒤 2014년 부산시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까지 에코인블랭크가 초점을 맞췄던 부분은 생산량보다는 제품의 완성도였다. 재활용 가방이지만 디자인과 품질 면에서 뛰어나야 일반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고, 사업의 지속가능성도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 뒤 1년6개월 정도 제품개발에 집중한 결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자체 브랜드인 B.BAG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B.BAG이라는 이름은 ‘Beyond Bag(가방을 넘어서다)’이라는 의미와 함께 신 대표의 고향이자 사업장이 위치한 부산에서 만들어진 가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직소백(zigsaw bag)은 B.Bag의 토드백 라인으로 다양한 재활용 원단을 조합한 디자인이다. 서로 다른 원단을 부분과 부분을 이어주면서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하는데, 재활용 원단 사용률이 70∼80%에 달한다. 그동안은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 납품을 해왔으나 올해부터는 파크랜드 매장과 몇몇 의류점에 납품돼 일반 고객과 만나고 있다. 에코인블랭크에서 일하는 7명의 봉재사 모두 경력단절여성으로, 에코인블랭크는 일자리 창출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신 대표는 에코인블랭크를 창업하기 전부터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기업 지원 기관에서 4년 정도 근무한 경험도 있다. 그는 “기존의 경제가 갖는 편향된 부분을 개선할 방법으로 사회적기업에 주목하게 됐고, 기업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며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신 대표는 창업 전 지인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말로 설명하려면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지금은 에코인블랭크에서 만든 제품을 보여주면 10분 안에 사회적기업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사회적기업은 이론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로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