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공성훈(50) 씨는 소재와 기법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중시하는 미술 트렌드에 역행하듯 집요하게 정통 풍경화를 추구해왔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평범한 하늘과 바다는 그의 화폭에서 차갑고 황량한 민낯을 드러낸다. 자연의 숭고미를 넘어 현대 일상의 불안하고 녹록지 않은 현실을 은유하고 상징하는 이미지다. 보기 편하고 익숙한 풍경화에 무덤덤해진 사람들에게 ‘공성훈 풍경화’는 회화 특유의 세밀하고 사실적인 표현, 내밀하고 은근한 심리적 정서적 울림을 강력하게 일깨운다.
공 씨의 신작 풍경화 전이 오는 11월 8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지난해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의 ‘바람 그리고 바다’전에 이은 서울 전시에선 ‘어스름’을 주제로 가로 6m의 ‘버드나무’시리즈 등 대형 신작을 공개한다. 한동안 자신이 거주하는 수도권과 서울 변두리 지역의 풍경을 묘사해온 작가는 근래 낮과 밤의 경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인 어슬녘 풍경을 주목하고 있다.
일산 호수공원의 풍경을 묘사한 ‘버드나무’시리즈에선 산책길에 접하는 평범한 나무가 미스터리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이뤄낸다. 작품 ‘아침바다’는 가라앉은 짙은 색조로 바다의 거친 일렁임을 담고 있다. 얼마 전 휩쓸고 간 폭풍우의 흔적, 혹은 머지않아 휘몰아칠 격랑의 조짐을 예고하는 듯하다. 하늘과 거의 맞닿아 있는 바다 풍경은 평화롭기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그는 1990년대까지 다매체를 활용한 설치 영상 작업을 펼쳤다. 미대 출신으로 공대에 진학해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그러나 국내 미술계가 온통 미디어작업으로 향하던 1990년대 후반 평면회화로 복귀했다. 그러곤 작업실 주변과 여행지에서 경험한 ‘우리 동네’를 높이 2m 이상 대형 화폭에 옮겼다.
자신이 직접 촬영한 풍경 사진을 바탕으로 “빛을 강조하거나 왜곡함으로써 변형을 시도한” 공성훈 특유의 풍경화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한다.
담배 피우는 사람, 물 위에 떠 있는 부표와 오리, 하늘을 나는 비행물체의 연기 같은 동적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정중동(靜中動)의 긴장감이 드러난다. 거친 암벽을 묘사한 ‘절벽’ 그림엔 숨은그림찾기처럼 사람이 등장하고, 등지고 서 있는 남자의 흰머리 위로 희뿌연 담배 연기가 흩날린다. 파도의 흰 포말 사이로 수직의 노란 부표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서 있다.
미술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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