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캔버스 평면을 아궁이 불에서 우러난 조선식 콩기름 묻은 종이 장판이나 시골 타작 마당을 연상케 하는, 노랑도 아니고 황갈색도 아닌 누런 흙색 혹은 여물 쑤는 무쇠솥 근처의 잿빛 검정을 밑그림으로 즐겨 깔았다. 내가 본 그의 그림 중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그의 밑그림 처리 방식이었다.’ 가수 겸 화가인 조영남은 전준엽(62·사진) 작가의 그림을 그렇게 평했다.
전 작가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일조원갤러리(02-725-3588)에서 초대전 ‘빛의 정원에서’전을 열고 있다. 작가의 32회째 개인전으로 갤러리에선 한국적 미감을 서양화 재료와 기법으로 표현해낸 그의 최근작 30여 점을 이달말까지 만날 수 있다.
모두 풍경화로 현실과 꿈의 세계를 오가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 묻어나는 그림들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묵산수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산과 물, 소나무와 바위, 정자 등이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이채롭다. 그러면서도 조영남이 찬탄을 금치 못한 누런 그림의 바탕색들이 정서적으로 수묵산수화보다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특히 마무리 스크래치 효과로 대자연속 유형·무형의 대상물들이 서로 녹아들며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그 같은 독창적인 화법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해외 컬렉터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가진 전시회만 모두 13차례에 이르며, 요즘도 독일 뮌헨의 슈나이더갤러리에서 전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 그림은 유화로 그린 진경산수화로 보시면 됩니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개념을 정립하신 분은 겸재 정선인데 실경산수화가 실제 보이는 것을 그린 그림이라면, 진경산수화는 풍경 속에 마치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그리는 그림이죠. 그래서 그림 속에 소나무 향기,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등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앙대 예술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오랜 기간 언론사에서 미술기자 생활도 했던 전 작가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유명한 ‘민중미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전 작가의 작품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문화풍속도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한국의 토속적인 미감을 반추상으로 그려내는 화가로 통한다. 그는 민중미술 화풍에서 벗어나며 한국적 미감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고심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우리나라 흙담과 온돌방의 종이 장판이었다. 누리끼리한 그 색상과 질감에서 한국인들의 생로병사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 제목도 그렇지만 저는 1990년대 초반부터 ‘빛의 정원’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빛이란 ‘홍익인간’ 등 우리 한민족의 마음 밑바탕에 깔려 있는 희망과 미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정서를 밑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경치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경치를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전 작가의 작품을 동도서기(東道西器)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우리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화와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작업이 병행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인 ‘개념미술’적 측면에서 보면 그의 작업은 고루해 보이는 측면도 없잖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다. 그리고 그의 주장 속에 그의 예술관이 담겨 있다.
“현대미술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세련된 형식이나 다양한 방법론에 비춰보면 저는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촌스러운 형식과 진부한 방법론을 택하고 있습니다. 우선 평면을 고수하고 있으며 재료에서도 유화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형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미술이 형식이나 논리, 아이디어보다 감성에 충실해야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제 고집 때문입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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