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말에 신설된 법인세법 제56조의 ‘기업의 미환류 소득에 대한 법인세’는 자기 자본이 500억 원을 초과하는 법인이나 공정거래법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이 번 당기 소득의 일정 부분(시행령의 80% 또는 30% 중 택일) 중에서 투자·임금 증가·배당 등으로 지출하지 않은 금액의 10%를 세금으로 추가 납부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課稅)로써 투자와 소비 증가를 꾀하려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 투자는 늘어나지 않고 배당만 늘어나 미래의 투자와 성장 여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배당 증가가 중산층을 비롯한 주요 소비 계층의 소비 여력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기업가는 새로운 이윤 기회라고 판단하는 분야에 투자한다. 이윤 기회의 발견은 소비자 선호와 생산구조 및 기술 여건 등 미래의 경제 상황 변화에 대한 자본가·기업가의 주관적 통찰력에 의존한다. 임금은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른 근로자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주주에 대한 배당은 주주들의 요구와 자본가·기업가의 투자 전략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런 결정은 경제 상황의 변화와 그에 대한 자본가·기업가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며, 어느 누군가가 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이들의 판단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다.
지금 세계 경제는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여파로 불황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국채시장 붕괴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할 것을 우려해 장기간 양적완화를 했고, 일본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다른 주요 각국도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돈이 풀려 왜곡된 생산구조가 소비자 선호에 다시 맞춰지도록 교정하는 시장 조정 과정을 다시 돈을 풀어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 역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기존의 이윤 기회가 수명을 다해 감에 따라 기업은 새로운 이윤 기회를 찾는 일에 부심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이는 물론 지금 세계의 주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문제는 누가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더 나은 능력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생산구조를 만들 것이며, 또 이를 뒷받침할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정을 정부 관료들이 자본가·기업가보다 더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부가 기업 소득의 일정 부분을 투자, 임금 증가, 배당 등에 할애하도록 세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기업의 사적 영역을 침해하고 시장질서의 보존을 위해 지켜야 할 행위 준칙의 준수를 넘어서는 요구다.
법률이나 시행되는 정책 내용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 이는 곧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경제를 살린다고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확대 등의 정책을 펴 봤지만 결국 시장질서의 회복을 지연시키고 불황의 늪을 길게 하고 있지 않은가.
요컨대 기업의 미환류 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수단’과 투자와 소비 증가라는 ‘목적’ 간에는 의도하는 인과관계가 없다.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 당국자의 다급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시장과 기업이 운행되는 질서를 파괴하는 이런 정책으로는 의도하는 효과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효과를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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