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평가체계 허점… 제약산업 발전도 ‘빨간불’신약 건보 급여여부 따질때
기존약과 비용·효과성 비교
기준 일관되지 않고 불합리
개선효과 등 고려되지 않아

국내 환자 신약 접근성 낮아
작년 항암제 44% 비급여 결정
도입후 보험적용 10년씩 걸려
다양한 신약 평가체계 검토를


만일 만병통치약이 개발된다면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보험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기존 약과 비교해 너무 고가일 것이 뻔해 약의 비용·효과성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만병통치약이 개발된다고 해도 건강보험 급여가 불가능해 부유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난센스 같지만,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푸념 섞인 농담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만병통치약 개발 자체가 희박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 개발된다면 현재의 국내 신약 가격 결정제도 하에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논의다. ‘긴급진단 의약시스템’ 기획시리즈에서 진단한 바와 같이 정부가 건강보험재정 절감 중심의 정책을 펼치다 보니,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가기준 형평성 논란 = 지난 16일 연세대 의과대학 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강혜영 연세대 약대 교수는 국내 신약가치 평가방법에 대해 자동차 산업에 빗대 설명했다.

강 교수는 “포르쉐라는 차가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와서 포르쉐 가격을 정할 때 이 차를 이미 시장에 있었던 페라리와 비교하면 각 차의 장단점을 견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만약 비교 대상이 ‘포니’와 같이 매우 오래됐지만 아직도 사용하는 차가 된다면 적절한 가치 비교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국내 신약 가치 평가에서 그대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신약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 여부를 평가할 때 기존 약과 비용·효과성을 비교해 평가한다.

그러나 대체 약제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약제가 비교 약제가 되다 보니 오랫동안 사용되던 약이 선정된다. 오래 쓰인 약은 약가(藥價)인하 등으로 가격이 하락한 데다, 과거에 약가가 결정돼 그만큼 약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에 비교하면 포르쉐라는 신차를 기존의 낡은 ‘포니’와 같은 차와 비교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 신약은 같은 적응증을 가진 10년, 20년 된 약과 비용경제성을 비교한다. 이는 최근에 개발된 치료제의 경우 표적치료 등 과거보다 개선된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약가 산정에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강 교수는 “지금처럼 의약품을 평가할 때의 기준이 일관적이지 않고 불합리하여 신약의 가치가 과소평가된다면, 국내 제약산업의 연구·개발(R&D)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환자에게 신약은 구약 =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면, 새로운 치료제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열홍 고려대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환자치료를 위해서 의사들은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면 신약을 처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신약 등재가 어려운) 현 시스템에서 환자의 경제상황을 생각하면 그럴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신약의 보험등재율은 크게 낮으며, 국내 도입된 신약의 수도 적다. 특히 진행성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신약에 대한 시기적절한 건강보험 급여 결정이 수명연장과 삶의 질 개선에 있어서 절실한 요소임에도, 국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은 낮다는 의미다. 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체 급여 신청 건수의 27%가 비급여 결정됐으며, 특히 항암제의 44%, 희귀질환치료제의 36%가 비급여 결정됐다.

전 세계적으로 주요 결장, 직장암 치료제로 꼽히는 표적항암제 얼비툭스(세툭시맙)와 아바스틴(베바시주맙)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후 보험이 적용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희귀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의 치료제 역시 마찬가지다. 17년 전인 1996년 미국에서 발매돼 전 세계적으로 많은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어왔던 약물 ‘코팍손(글라티라머아세테이트)’이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에야 국내 급여등재 및 출시돼 국내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에게 선보였다.

◇의약품 가치 다양한 의사결정 반영해야 = 전 세계적으로 제약회사들이 서로 혁신을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신약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여한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데이비드 그레인저(David Grainger) 부사장은 “연구진들이 환자들의 생명연장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제도상의 문제로 새로운 기술의 결과물이 도입되지 않거나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와 의료진의 관점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의사결정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경 성균관대 약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보험등재 성공률이 70% 내외로 낮고, 특히 고가항암제는 약값 부담으로 가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약값에 보험을 적용하는 의사결정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선호를 반영할 수 있는 ‘다기준 의사결정 분석(multi-criteria decision analysis·MCDA)’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MCDA는 캐나다, 호주, 영국 등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신약에 대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마련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뿐 아니라 다양한 신약 평가 접근 방법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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