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희수를 맞은 소설가 한승원(76·사진)이 장편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를 출간했다.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한 남성의 이야기다. 25년 전 쓴 희곡 ‘아버지’를 바탕으로 5년에 걸쳐 완성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항상 순응하는 삶을 살았던 그이를 통해 시대적 아픔과 삶을 이끄는 힘을 그렸다.
주인공 김오현의 아버지 김동수는 남로당원이었다. 6·25전쟁 이후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장흥의 유치면 지역 빨치산이 돼 유격투쟁을 하다 숨을 거뒀다. 전쟁 당시 인민군이 동네를 장악했을 때 유치면 인민위원장을 했던 그는 고등계 형사였던 최종식을 인민재판을 거쳐 죽였다. 그러자 최 씨의 유족과 최 씨 문중 사람들은 인민군이 퇴각하자 곧바로 오현의 할머니와 어머니, 네 명의 형제들을 살해했다. 외가에 가 있던 오현과 설맞은 그의 할아버지만 살아남았다. 할아버지는 최 씨 문중을 찾아가 무릎을 꿇어가며 하나 남은 손자의 목숨을 구걸해 오현을 지켜냈다.
오현은 평생 살아남기 위해 비굴함이 몸에 밴 생활을 이어갔다. 자신을 조롱하는 친구들에게 성적인 수모를 당하고, 옆집 노총각에게 아내가 추행당해도 큰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고,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나 피에로가 돼 돈을 벌어 가정을 꾸렸다. 심지어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빨치산 토벌대장 박장수의 창고관리인으로까지 일했다. 악착같이 생을 부지했다. 세상을 향한 그의 유일한 저항은 자식을 낳는 것이었다. 무너진 가문을 일으키고 이어나가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11명의 자녀를 낳았다. 당시는 산아제한을 하던 때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도 항상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가르침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런 유순한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녀들에게 함구했다.
70대가 된 그가 가슴 속에 담고 있던 과거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것은 시인인 일곱째 아들 칠남이다. 고향인 유치면이 저수지가 돼 잠기고, 오현은 조상들을 뵐 면목이 없다며 다시 가보지 못한다. 칠남은 그런 아버지를 끌고 저수지에 내려가 마치 물에 잠긴 고향을 끄집어내듯 아버지의 일생 이야기를 끌어낸다.
실제 소설의 배경이 된 유치면은 빨치산 투쟁이 거셌던 곳으로 6·25전쟁 전후 ‘모스크바’로 불렸다. 유치면은 10년 전 장흥댐 건설로 물속에 잠겼고, 한 작가가 이를 소설로 승화시킨 것이다. 책 출간에 앞서 19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노자는 ‘물은 아래로만 흐르지만, 가장 위대하다’고 했다”며 “이제는 물에 잠긴 빨치산의 투쟁지, 물처럼 살았던 오현의 모습을 통해 역사와 신화를 되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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