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일 화백의 ‘물(Water) 시리즈’ 작품들 세부. 반짝이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사각형의 작은 색점들로 원색의 화면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안영일 화백의 ‘물(Water) 시리즈’ 작품들 세부. 반짝이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사각형의 작은 색점들로 원색의 화면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잊혔던 천재화가’ 안영일, KIAF 출품으로 귀환

‘잊혔던 천재 화가’ 안영일(83·사진)이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단색화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안 화백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자신의 300호짜리 대작 7점을 출품, 컬렉터 등 미술애호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나이로만 보면 김환기를 비롯,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등 한국의 1세대 단색화 화가와 같은 세대다. 그러나 안 화백의 그림이 단색화 로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안 화백이 이번 고국 방문길에 선보인 단색화 작품은 물(water) 시리즈. 페인팅 나이프 기법으로 그려진 사각의 작은 색점들로 대형 캔버스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색점들은 마치 공기와 소리 그리고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태양광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물의 무수한 입자들을 연상시킨다. 18일 출국에 앞서 기자와 만난 안 화백은 물 시리즈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미국인 후원자와 전속 화랑 사이에 작품 판매건으로 송사가 벌어졌다. 송사가 계속되며 그림에 대한 열정이 식었고, 소일거리 삼아 샌타모니카 해변으로 바다낚시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바다에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며 온 천지가 하얗게 변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런데 짙은 안개가 걷히자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전개됐다. 마치 진주로 이뤄진 발처럼 수만 가지의 색으로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심장이 기쁨으로 터질 듯하고, 전신이 흥분으로 떨렸다. 그때의 감동을 물 시리즈에 담았다.”

그의 페인팅 나이프 기법은 ‘물 시리즈’ 이전 그림인‘ 캘리포니아’, ‘해변에 서서’, ‘현악사중주’, ‘항구’ 등의 작품 시리즈에서 구상적 형태를 띠든, 추상적 형태를 띠든 계속 나타난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기법으로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물 시리즈’에서 보다 정교하게 집약된다.

미술평론가인 윤진섭 시드니대 미대 명예교수는 “안영일의 그림에 나타나는 작은 색점들의 반복은 단색화 화가들의 반복적 특징과 궤를 같이한다”며 “상반된 색을 캔버스 바탕에 칠함으로써 발색 효과를 만들어내고, 색과 색의 관계를 통해 섬세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가운데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단색으로 보이는 미적 효과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비록 지금은 국내 화단에서 아는 이가 많지 않지만 안 화백은 한국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던 시절에는 ‘천재 화가’로 통했다. 중학생이던 13세 때 국전에서 특선을 했으나 나중에 나이를 알게 된 심사위원들이 입선으로 내렸고, 20대에 국전 초대작가로 선정됐다. 1957년 서울대 미대 4학년 재학 중에는 미 대사관이 실시한 공모전에서 미 국무부 심사위원에게 뽑혀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미국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한국인이 된 것이다.

안 화백은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진 후에도 나이프를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대한 그의 집념은 도록에 실린 그의 독백에 잘 표현돼 있다. “80년 동안 그림만 그리며 살았다. 나와 그림은 이제 분리할 수 없는 것, 바로 나 자신이다. 나에게 그림은 사랑이고, 기도이며, 나를 열고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또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 같은 것이다. 그림은 내게 있어 존재의 표현이고, 이유이며, 소통이고, 해방이다.”

글·사진=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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