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 논설위원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의 내면엔 절반은 천사, 절반은 악마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철학 교수 출신으로 ‘은둔의 기인(奇人)’ ‘영상(映像)의 철학자’ 등으로도 불리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테런스 맬릭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여주인공 대사의 한 대목이다. 맬릭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해 1978년 개봉한 영화로, ‘영화음악의 세계적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흐르는 시적 장면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며 ‘세계 영화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론가들의 이구동성 극찬이 과장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럴 수 있게 뒷받침한 인물이 당시 시력을 잃어가고 있던 촬영감독 네스토르 알멘드로스였다. 그는 맬릭의 의도를 좇아 거의 모든 야외 장면을 ‘매직 아워(magic hour)’에 인위적 조명 없이 부드러운 자연광으로 찍었다. 사진·영화계의 전문 용어로 굳어진 ‘매직 아워’는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녘부터 일출 직전까지, 일몰 직후 땅거미가 지는 저녁녘부터 어둠이 덮이기 직전까지다. 푸른빛과 붉은빛, 밝음과 어둠 등이 공존하면서 매혹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길어야 각각 30분씩 미만으로 짧게 지나간다. 영화 ‘천국의 나날들’은 그 ‘마법의 시간’에 황금색으로 물결치는 밀밭, 고풍스러운 저택, 새떼가 날아가는 하늘, 이슬에 젖은 풀숲 등을 배경으로 모순과 조화,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불후의 명화로 평가받는다.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성균관대 미술학과 교수인 공성훈(50) 화백의 최근 작품들이다. ‘매직 아워’에 해당하는 어스름 속의 사물과 풍광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무슨 일인지 일어날 것같이 낯설고 불안하기도 한 미묘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지난 9월 4일 개막한 공 화백의 개인전 ‘어스름’이 11월 8일까지 이어진다. ‘무궁화와 비행기구름’ ‘파도’ ‘버드나무’ ‘겨울나무’ ‘감시탑’ 등 16점을 선보인 그가 “어스름은 빛과 어둠의 경계이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이기도 하다”며 “현실의 풍경을 현실적이지 않게 담아냈다”고 밝힌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면서 상상력의 무한 확장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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