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인식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동시대를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역사를 인식한다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동의학에서는 이를 이청천시(耳聽天時)라고 한다. 귀(耳)가 듣는다(聽)는 것은 첫째로 개체가 스스로의 현 위치(position)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전기적·화학적·기계적 자극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고 있다. 전자기파는 전 방위에서 비처럼 쏟아진다. 주변의 공기는 무차별적으로 진동한다. 그 안에서는 수많은 유기물과 무기물이 생성되고 동시에 소멸한다. 인간의 귀는 이처럼 복잡한 자극들 속에서도 체액으로 가득 차 있는 전정계(vestibular system)라는 장치를 통해 모든 상이한 감각신호를 등가적으로 결합시켜 우리 몸의 ‘정위(正位·바른 위치)’를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이것이 ‘듣는다(聽)’를 뜻하는 한자 속에 귀(耳) 바로 아래 왕(王)이 등장하는 이유다. 스스로의 위치를 지각하고 움직임 속에서 항상 ‘정위’를 잃지 않는 균형감각을 왕(王)이라고 하는 것이다.
귀가 두 번째로 듣는 것은 거리(distance)다. 인간의 귀가 주변 사물의 위치를 측정해내는 거리감각을 덕(德)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이 낸 소리가 주변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소리 사이의 시간지연, 강도 차, 음파의 간섭패턴 등을 통해 주변 사물의 수평위치, 상대적인 거리와 크기뿐만 아니라 그 형태와 질감까지도 구분해낼 수 있다. 가령, 이어폰을 끼고 보행하는 경우 인간은 귀가 닫혀있는 만큼 환경에 둔감하고 주변에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귀가 듣는다는 것은 나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위상(位相)을 확정하고 움직임의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귀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각의 위상에 따라 고유한 진폭과 주파수를 통해 일정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 파장에는 언제나 길고 짧음이 있다.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fad)도 있고, 잠시 유행(fashion)하는 것도 있으며, 하나의 흐름(trend)으로 자리 잡는 것도 있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paradigm)도 있다. 마치 한 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는 것처럼, 이른바 시대의식이라는 것 또한 매 순간 함께 만들어지고 함께 이행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해가 뜨고 지며 세상이 성립하듯, 사회가 ‘하나(一)로써 크게(大) 머무는 바(時)’를 천시(天時)라고 하고, 인간이 이를 스스로의 행위 속에서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이청천시(耳聽天時)라고 한다.
공자는 인간의 예순 해째 학습과정을 이순(耳順)이라고 칭명했다. 대한민국이 해방된 지 70주년이 된 올해에도 여전히 이 사회의 귀는 늘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우리의 귀가 듣고 있는 것이 잠시 잠깐의 유행인 것인지 거대한 시대정신인 것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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