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강원 강릉시 입암동 강릉중학교 축구장 인근에서 김성현 코치가 학생들과 연습경기를 하기 전 공을 가지고 몸을 풀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지난 19일 오후 강원 강릉시 입암동 강릉중학교 축구장 인근에서 김성현 코치가 학생들과 연습경기를 하기 전 공을 가지고 몸을 풀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강릉중학교 축구부 김성현 코치

“부원들의 눈높이에 맞춰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들이 제 발로 제 방을 찾더라고요. 골을 잘 넣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19일 오후 강원 강릉시 입암동 강릉중학교 축구부 숙소에서 만난 김성현(39) 코치는 “강압적인 방법으론 절대 아이들의 숨겨진 장점을 끌어낼 수 없다”면서 ‘존중과 소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흔히 ‘운동부 코치’하면 떠오르는 무섭고 거친 이미지를 그에게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코치는 인터뷰 내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재차 반복하며 ‘학교 운동부’에 대해 기자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차례로 깨줬다.

3명의 코치진과 함께 47명의 축구부원을 이끌고 있는 김 코치는 대학 졸업 후 강릉시청 소속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다 10년 전 강릉중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릉중 축구부는 강원도의 축구 명문으로 올봄 강원소년체전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는 코치가 된 후 선수 시절 자신이 느꼈던 ‘아쉬움과 후회’를 아이들이 답습하지 않도록 팀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 코치는 “과거 군대식 스파르타 훈련을 받으면서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 대해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면서 “축구부의 기강을 바로잡고 현란한 축구 기술을 가르치는 일보다 아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김 코치는 아이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이 아닌 ‘친구 같은 코치’로 통한다. 휴식시간 함께 영화를 보고 고민상담을 하는 일은 어느덧 김 코치와 아이들 사이 익숙한 일상이 돼 버렸다. 김 코치는 “마흔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모두 돌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짬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휴대전화 게임을 일부러 배운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답답하고 맘에 안 드는 것”이라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학생들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아이들이 ‘뛰어난 축구선수’보다 ‘올바른 청소년’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오직 ‘축구’만 생각하고 운동에 모든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운동부 코치들의 단골 훈화와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는 “아이들은 축구부원이기 전에 강릉중 학생”이라면서 “학업과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는 게 득점을 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라고 말했다.

실제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부원들이 생활하는 축구부 숙소는 시험을 준비하는 독서실로 탈바꿈한다. 시험기간만큼은 코치진도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아이들의 시험 준비를 돕는다. 평소에도 김 코치는 부원들에게 축구 못지않게 ‘책 읽기’를 강조한다. 코치진이 아이들에게 이처럼 학업을 강조하는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의 ‘잠재적 능력’ 때문이다. 김 코치는 “아이들은 이제 갓 중학생으로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수히 많다”면서 “축구라는 틀에 아이들을 묶어두지 말고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축구가 전부이고 축구선수가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자신만의 더 큰 장점이 분명 있을 수 있다”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응원한다. 올해 초 가정형편이 어려워 축구를 포기하려 했던 이재황(14) 군이 지금까지 운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김 코치를 비롯한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이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처음 시작한 이 군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매일 오전 5시 운동장에 나올 만큼 대단한 열정을 가진 아이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이 군을 김 코치는 유독 아꼈다. 할머니 손에 자란 이 군은 김 코치에게 매번 “할머니를 위해 꼭 좋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경제적인 문제로 축구부 생활을 더 이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 군은 축구를 그만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이 사실을 안 김 코치와 코치진은 이 군을 도울 방법을 백방으로 찾기 시작했고 결국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주변의 도움으로 이 군은 다시 축구부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김 코치는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축구에 대한 큰 포부를 가진 아이가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면서 “코치진으로서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그저 도왔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로 10년 가까이 지도자 생활을 해 온 김 코치는 이름 난 선수를 여럿 배출하는 스타 코치보다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주변이나 축구업계에서 소문난 코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아이들이 자신들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함께 운동장을 뛸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