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의회와 그 주변은 ‘스파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의 하나다. 그만큼 국가 기밀을 포함한 정보가 많이 흘러다니고, 그것을 습득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경우엔 더 심하다. 강제 해산되기 직전까지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군사기밀마저 ‘자료 제출’ 명목으로 빼내려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국회의 보안 불감증은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사이버 보안’ 측면에서는 무방비나 마찬가지다. ‘북한 해커들의 놀이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국회 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이메일 비밀번호 유출, 악성코드로 인한 자료 유출 등 해킹 사건이 100여 차례 벌어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북한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기간 중 국회의 사이버 침해 피해자만 200여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외교통일위원장인 나경원 의원과 외통위 소속 및 국방위 소속 의원 등 3명의 보좌진 11명의 컴퓨터가 최근 해킹당해 국정감사 자료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21일 “내 이메일을 누군가 계속 해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지경인데도 국회와 해당 의원 측은 정확한 실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 연합작전계획이나 심지어 대통령의 일정과 동선 등이 흘러나갔을 가능성도 우려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회와 국가정보원 등이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국회뿐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 금융기관, 지하철 같은 인프라 시설, 심지어 언론사까지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는 나름의 방어 시스템을 갖추는데, 국회는 ‘정보 사찰’ 우려 때문에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고 한다. 국회 업무망은 인트라넷으로, 일반 인터넷 망과는 분리돼 운영하고 있어 그나마 보안 수준은 높다. 그런데 많은 의원 및 보좌관 컴퓨터는 일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인트라넷이라고 해서 안심할 상황도 아니다.

북한은 6000여 명의 정규 사이버 부대를 운용하는 등 사이버전 능력이 세계적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미국처럼 ‘보복’하기보다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국회에서 2년6개월째 표류 중인 ‘사이버테러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과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최소한의 장치라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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