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기 / 논설위원

황당했다, 미국의 한 판사가 ‘벌금 낼 돈 없으면 헌혈하라’고 했다는 지난주 외신.

당황스러웠다, 좋게 들릴 리 없는 그 선고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상의 인사 ‘좋은 아침(Good morning)’으로 시작돼….

“신사숙녀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밖에 헌혈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나가 헌혈하고 헌혈 증서를 가져오십시오.” 돈도 헌혈할 생각도 다 없는 피고인을 위해 덧붙인 한마디는 위압적이었다던가 - “수갑은 넉넉히 준비돼 있답니다.”

미 앨라배마주 페리카운티의 순회법원 마빈 위긴스 판사가 9월 17일 아침에 선고한 이 판결을 뉴욕타임스가 한 달 더 지나, 지난 19일 보도하면서 미국 법관의 윤리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현지 인권단체인 남부빈민법률센터(SPLC)는 헌혈 명령이 연방헌법에 앞서 앨라배마주 헌법 위반이라며 위긴스 판사를 주 사법조사위원회에 제소하고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이중적인 사법 체계의 운영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착취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사라 잠피에린 변호사)고 촉구했다. 피고인들은 대부분 폭행, 교통법이나 사냥법을 위반한 경범죄자였다고 한다. 헌혈 판결 아니라 ‘흡혈 판결’이라는 비유도 그리 거칠게 들리진 않을밖에.

가난이 죄 아닌 나라가 어디 있으랴.

형법 제41조대로라면 벌금은 징역보다 훨씬 가볍다. 비교하고 말고 할 것 못 된다. 그런…가. 징역은 집행을 유예받을 수 있지만 벌금은 그런 길 막혀 있다. 돈 없는 사람은 징역을 선고받고 그 집행을 유예받는 게 유리하다고 여길 만하다. 공직 입신의 꿈 접은 연장자라면 더더욱…. 돈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돼야 하는 벌금 대신 징역을 자청하면서 집행유예로 풀어만 달라고 호소하는 ‘못 가진 자’의 피눈물에 벌금 선고는 흡혈 판결로 어릴밖에.

벌금 집행유예제 도입이 법조 안팎의 압도적 중론이다.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7월 14일 국회에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최신 사례로서 현행 제62조(집행유예의 요건)의 ‘금고 또는 징역’을 ‘징역, 금고 또는 벌금’으로, 딱 두 음절 더 써넣자는 대목부터 돋보인다. 그 법안이 이튿날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리스트에 오르는가 했더니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대표 발의한 이 의원이 다른 곳 아닌, 그 법사위의 수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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