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 사회부 차장

‘정윤회 문건’ 등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해 1심 법원이 최근 무죄를 선고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는 지난 15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 전 비서관이, 함께 기소된 박관천 경정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에게 전달한 문건은 대통령비서실장 등 상부에 보고한 원본이 아니라 추가 출력물이거나 복사본이어서 대통령기록물법상 규정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격하게 법원을 비난하면서 다음 날 즉각 항소했다. 어차피 박 경정이 펜으로 쓴 문서도 아닌데, 컴퓨터로 작성해 3부 출력해 조 전 비서관에게 보고한 문서만 원본이고, 원본과 똑같은 4번째 출력물이나 복사본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본과 구분이 안 되는 추가 출력물·복사본은 똑같은 대통령기록물로 봐야 한다는 것으로, 일견 일리 있는 반발이다. 그런데 대통령기록물법과 판결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법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조(목적)가 ‘이 법은 대통령기록물의 보호·보존 및 활용 등 대통령기록물의 효율적 관리와 대통령기록관의 설치·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을 지적, 재판부는 “원본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돼 보존되면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추가 출력물이나 복사본 보존까지 강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법은 과거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기록들이 제대로 보존·관리되지 않은 데 대한 반성으로 제정된 것이니만큼 종이문서 원본과 전자파일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등록되면 입법목적은 충분히 달성됐다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기록물의 외부유출 금지가 아니라 기록물의 삭제·훼손 금지에 방점이 있기 때문에 원본 1부만 보존돼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의 이런 판단이 복사문서가 원본과 같이 인정되고 보호되는 기존 판례에 배치되고, 원본만 대통령기록물이어서 30년 동안 비공개되고 같은 내용의 복사본·추가 출력물은 얼마든지 유출돼도 괜찮다는 논리여서 관련 법률의 입법 취지와 법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논리는 옹색하다. 박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 씨가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청와대 핵심비서관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을 비롯한 ‘십상시’(十常侍·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과 강남 모처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 개입하고 김기춘 비서실장의 낙마를 모의했다는 내용의 정윤회 문건은 허무맹랑한 ‘찌라시(사설정보지)’인데, 그 찌라시는 외부로 나가면 안 되는 대통령기록물이고, 이를 유출한 건 국기 문란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법원의 이번 판결은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라고 해도 아무것이나 보호할 가치가 있는 기밀이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는 고민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sdgim@munhwa.com
김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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