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다. 작가의 역사관이나 상상력에 따라 동일 인물이나 사건이라 하더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정사(正史) 기록물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고증을 거친 정통역사드라마가 주류를 형성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접근보다 교훈과 계몽에 초점을 맞추면서 교조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역사에 대한 단일한 해석의 위험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역사적 사실(fact)에 대한 작가의 상상(fiction)이 결합된, 이른바 ‘팩션(faction)’이 자연스럽게 역사드라마의 주류가 됐다.

SBS 창사25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지배세력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의 일상이 붕괴됐던 고려 말기를 배경으로 조선 건국의 당위성을 설파한 팩션 역사드라마다. 지난해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과 비견될 만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팩션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실존 인물 정도전(김명민), 이성계(천호진), 이방원(유아인)과 가상 인물 분이(신세경), 이방지(변요한), 무휼(윤균상)을 조선의 기틀을 세운 ‘육룡(六龍)’으로 설정함으로써 고려 패망과 조선 건국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용비어천가’ 1장 첫 구절인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에서 차용한 제목의 육룡이 조선 세종의 6대 선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팩션으로서의 지향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선 개국 초기 왕권지상주의를 강조했던 이방원에 맞서 재상중심주의를 주장했던 정도전은 물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초들을 육룡에 포함시킨 극적 상황 설정은 고려 패망과 조선 건국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상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팩션으로서 역사드라마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지금 현재 상황을 환기시키지 않고 현재의 관점으로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성계와 이방원 그리고 정도전의 에피소드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민초의 삶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분이와 이방지 그리고 무휼 에피소드가 권문세족의 부당한 착취나 수탈에 맞서는 민초의 저항으로 형상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정도전과 유생 결사단은 도당(都堂) 당권파에 맞서 원나라와의 수교를 막고 전쟁을 저지하겠다며 결의를 다지면서 ‘무이이야(無以異也)’라는 노래를 부른다. “칼춤에 꽃놀이 도화전에 노랫가락 시리게 흥겨운데 오백년 공들여 애써온 대업 모두 허사로다. 아비는 칼 맞아 스러지고 자식들은 세금에 찢겨죽고 잿가루 날리는 만월대에 통곡소리 구슬퍼라”라는 가사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 것은 현재의 관점으로 고려 말기를 재구성한 효과이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경작하여 수확한 곡식을 권문세족에게 빼앗긴 분이의 분노와 절규에 공감하는 시청자가 많은 것은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고려 패망과 조선 건국 과정에서 기록되지 않은 민초의 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팩션의 장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허구적 상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팩션 역사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해석과 상상이다. 시청자가 역사적 시간과 공간 속의 등장인물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할 때 역사적 사실의 현재적 의미가 새롭게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확의 9할이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착취당하는 고려 말 민초의 피폐한 현실에 대한 시청자의 해석과 상상이 중요한 이유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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