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장르 문학은 이중적 존재이다. SF, 추리·스릴러, 공포, 로맨스물 같은 장르문학은 순수 문학에 비해 낮은 취급을 받는다. 한국문학의 대표 소설가와 추리· 판타지·로맨스 작가 사이에는 일종의 나눔 선이 있다. 하지만 대중의 열광은 이 같은 계급적 피라미드와는 별개이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추리 소설은 몇 년째 베스트셀러이고,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사회파 미스터리, 스티븐 킹의 공포물엔 탄탄한 고정 팬덤이 있다. 셜록 홈스의 활약에는 (물론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드라마 덕분이지만) 세대를 넘어 환호한다. 소설을 넘어 영화, 드라마, 웹툰 등으로 확대하면 우리는 매일 매일 로맨스, 스릴러, 추리, 탐정, 공포 이야기에 빠져 산다.
3권짜리 ‘NOW WRITE 장르 글쓰기’(SF 판타지 공포·로맨스·미스터리)는 제목대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이 대중적 이야기 쓰는 법을 알려준다. 각 분야의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 제작자, 그것도 대부분 장르 문학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네뷸러상, 휴고상, 브램 스토커상 등을 휩쓴 1급 작가들이 들려주는 제대로 이야기 쓰는 법 가이드이다. 쓰는 법을 배운다고 모두가 스티븐 킹이나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의 애칭)가 될 순 없지만 그래도 여러 작가들이 자기 체험을 곁들여 들려주는 실전 조언이니 예비 작가라면 꼭 읽기를 권한다. 시중에 이미 숱한 소설 창작법 책이 나와 있지만,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마음을 훔치는 악당 만들기(추리), 살인자·피해자·형사의 시선(탐정물), 범죄 장면의 액션과 리액션(미스테리), 장르에 따라 달라지는 러브신(로맨드) 등 구체적 상황별 글쓰기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 셋째도 재미, 즉 고귀한 문학적 성취보다 어떻게 하면 독자들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 것인가를 지상 최대 명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책은 이 같은 원래 용도와 다른, 사실 더 매력적인 용도가 있다. 평범한 관객·시청자들에게 각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가 나와서 뻔한 사랑을 하는 수목 드라마에 빠지는지, 공포물은 어떻게 우리 내면을 반영하는지, 각 장르는 어떻게 시작돼 지금에 이르렀는지, 각 장르의 뛰어난 대표작들은 무엇인지까지 장르문학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맨스 소설의 인기 이유를 보자. 로맨스 소설 독자의 절반 이상은 25∼54세 사이의 여성이지만 전체 독자 연령대는 10대 초반에서 75세 이상까지 폭넓다. 대졸자가 절반 가까이 되며 대학원 학위가 있는 독자도 15%에 이를 정도로 고학력이다. 남성 독자도 많다. 미국 로맨스 작가협회에 따르면 전체 로맨스 독자 중 22%가 남성이다. 많은 남성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로맨스 고정 독자는 대략 2억 명 이상. 이렇게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로맨스 소설의 매력이라면 바로 희망과 용기, 해피엔드에 대한 확신이다. 로맨스 소설은 남녀 주인공이 그들을 갈라놓는 위협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하다 서로 사랑하고, 그것이 평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사랑임을 깨달아 영원을 약속하며 해피엔드를 맞는다.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도 로맨스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잘되고, 진실한 사랑이 승리한다. 불확실한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 흔히 로맨스물은 여성을 무능하게 묘사하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따른다고 알려졌지만, 초기 로맨스 소설을 보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중요하게 여겼고 보통 완벽하게 유능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니, 이 또한 편견이라고 밝힌다.
반면 우리가 공포물을 보는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힘으로써 시간을 거슬러 과거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한밤중에 마주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놀이 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오싹함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공포 체험을 통해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두려움, 즉 침대 밑에 숨어 사는 괴물 혹은 악몽 속에서 찾아오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마주하고 떨쳐 낼 수 있게 된다.
한편 판타지는 가장 순수하게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며 스릴러나 미스터리 이야기 속 악당은 우리들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반영한다. 이들 장르물에 우리가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결국 그 속에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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