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 고려대 교수, 前 외교부 차관

필리핀에서 1999년 11월에 열린 제3차 ‘아세안+3’ 정상회의 계기에 한·중·일 3국 정상이 비공식 조찬 회동을 했다. 회담 직후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가 서울을 방문했다. 외교안보 분야 대선배들이 마련한 오찬 자리의 말석에 앉아 국무부 당국자의 발언을 듣던 필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는 불쑥 “(한·중·일) 세 나라가 만나서 주로 경제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저는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을 믿지 않아요. 결국, 세 나라가 정치와 안보 얘기를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한·중·일이 미국을 빼고 만나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 후 한·중·일은 아세안+3 정상회의 때마다 별도로 정상회의를 하다가 이를 역내로 가져와 2008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정상급 회의를 출범시켰다. 일본에서 1차 회의가 열린 후 3국이 번갈아 매년 개최해 2012년 5월 제5차 정상회의까지 계속됐다. 3국 정상은 경제·문화·환경·재난 등의 문제를 토의했지만, 북핵(北核) 문제와 정치적 신뢰 구축을 위한 방안 등도 협의했다. 결국에는 경제와 안보 문제를 함께 다루게 됐으니 1999년 미 국무부 관리의 ‘우려’가 현실화한 셈이다.

하지만 2008년 한·중·일 정상회의가 정식으로 출범한 이후엔 미국이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얘기는 없었다. 같은 해 한국에 보수 성향의 이명박정부가 출범해 한·미 관계가 견고해졌고, 일본에 2009년 민주당 정부가 출범하긴 했지만, 미·일 관계의 기초가 워낙 단단했으므로 미국은 3국 정상회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중동 문제에 몰입하느라 3국 정상회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2012년 9월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국유화 조치를 하면서 중·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그해 말 등장한 아베 신조 총리는 중국의 부상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0년 일본의 GDP를 추월하고 미·일이 주도하는 아시아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통해 중국에 가했던 침략의 역사에 대해 침묵해야 했다. 식민통치를 통해 한국에 가했던 핍박의 역사는 잊어야 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2012년부터 본격화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에 적극 부응하면서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했다. 결국, 3국 정상회의가 2012년 5월 이후 재개되지 못한 배경은 중·일 전략 갈등이다. 한·일 역사 갈등은 그 부수물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전략적 성찰이 필요하다. 미·일과 힘을 합쳐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한반도 통일을 위해 중국의 협조를 확보하기 위해선 한·중·일과 한·미·일 협력 체제를 함께 유기적으로 가동해 나가야 한다. 한·중·일 협력은 동북아 지역 협력을 지향하고, 한·미·일 협력은 북한을 향한 안보 협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 3국 정상회의는 중국과 일본 간의 불필요한 전략 갈등을 완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일 양국에도 도움이 된다. 3국 협력이 제대로 작동되면 한·일 관계 발전을 통해 한·미·일 안보 협력도 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도 보탬이 된다. 따라서 3국 정상회의는 계속되고 정례화돼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오는 11월 1일 3년 반 만에 제6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역내 협력을 목적으로 시작된 3국 정상회의가 동북아시아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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