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 국제부장

지난 10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이메일 한 통이 왔다.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 서옥자 고문이 보낸 것인데 미 하원에서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했던 레인 에번스 하원의원 1주기 추모식이 5일 하원 캐넌빌딩에서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서 고문은 이메일에서 “혹시 11월 초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의 국회의원과 정부 인사들,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참석해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에번스 하원의원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그는 잰 샤코스키(민주·일리노이) 하원의원과 함께 추모식을 준비했다고 했다. 서 고문은 에번스 하원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위해 싸운 과정을 기록한 책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를 지난 6월 펴냈던 인물이기도 하다.

파킨슨병을 앓던 에번스 하원의원은 63세를 일기로 지난해 11월 5일 고향인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내고 “미국의 영웅이 떠났다”고 슬퍼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같은 애도 성명을 발표한 것은 남다른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에번스 하원의원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오바마의 정치적 가능성을 간파하고 연방 상원의원 출마를 권유한 데 이어 상원의원이 된 그가 대통령선거에 나서도록 독려했던 인물이었다. 2008년 대선 승리 후 오바마가 제일 먼저 에번스 하원의원을 찾아 감사를 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에번스 하원의원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없던 정치인이다. 그가 1999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은 전쟁기 여성의 인권유린 문제로 봤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가 워싱턴에서 한·일 외교전쟁의 핵심이슈가 된 상황에서도 그가 동료의원들을 설득해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은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여성인권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위안부결의안은 지병 때문에 에번스 하원의원이 정계를 은퇴한 뒤 2007년 마이클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주도해 통과됐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에번스 하원의원이 씨를 뿌린 덕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중순 방미하기 전 “한·미 정상회담 때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대부(代父)라 할 수 있는 에번스 하원의원의 업적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언을 외교부 고위인사에게 한 적이 있다. 그가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이어주는 의외의 정서적 코드가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에번스 하원의원이 척박한 워싱턴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미국이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켜준 것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준 큰 선물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아무리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과거사에 분칠을 하기 위해 엔화를 워싱턴에 쏟아붓는다 해도 에번스 하원의원이 기억되는 한 위안부 문제는 지워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1주기 추모식을 미 하원의원들만의 조촐한 행사로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미 관계를 이어주는 상징인물로 그를 기억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레인 에번스’가 나올 수 있다.

musel@munhwa.com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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