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산간벽지에 가면 통신장비사용을 위해 기지국부터 찾는 것처럼, 카페는 이제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주요한 기지국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 바탕에 있는 인간의 행동생태를 동의학에서는 ‘비합교우(脾合交遇)’라고 한다.
‘비(脾)’란 췌장을 중심으로 한 인체 내분비계 생리활동을 말한다. ‘합(合)’은 인체가 상황조건에 따라 필요한 물질을 그때그때 합성해낸다는 뜻이다. ‘교우(交遇)’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공적·사적 만남을 의미한다. 요컨대 인간이 ‘비합교우’한다는 말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우발적(遇) 만남(交)들 속에서도 인체가 스스로의 육체적·정신적·사회적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분비계(脾) 활동을 통해 끊임없는 연접·매개기능(合:물질적 합성·의식적 결합·사회적 합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호르몬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인간이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대범해야 하는 상황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체내에서 ‘도파민’이 바로바로 합성되어야 한다. 이와 달리 섬세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규칙과 질서를 잘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인체는 내분비계에서 ‘세로토닌’을 안정적으로 합성해내야 한다. 한 인간이 배울 때에는 학생, 가르칠 때는 선생님, 부모에게는 아들, 아내에게는 남편, 직장에서는 상사이자 부하직원일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역할에 적응하는 능력은 모두 ‘비합교우’하는 생리체계에 기반 한 것이다.
카페가 커피를 마시는 특별한 장소였던 90년대까지만 해도 인간이 ‘비합교우’하는 능력은 대부분 학교와 직장 속에서 자연스레 길러지고 연마되었다. 하지만 학교와 직장이 교우의 공간이 아니라 성적과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상시적 업무공간이 되어버린 이후, 인간들은 하나둘 카페로 쏟아져 나와 마치 책을 보듯 인간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 행위론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왁자지껄한 카페 안에서 굳이 제 귀를 틀어막고 시험공부를 하거나, 붐비는 카페 속에 자리를 비집고 앉아 거의 종일 카페에 머무는 젊은이들이 생겨난 것은 교우기능의 퇴화가 인간의 거처(居處) 기능에까지 파급되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카페는 반나절 사용료 5000원 짜리 오피스텔이 되어가는 셈이다.
우리가 교우관계에 유난히 서툰 인간유형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일컫듯이, 인간의 사회관계학습능력이 퇴화하면 인간은 스스로 머물고 또 이동하는 탄력적인 거처능력이 대단히 경직되게 된다. 동의학에서는 이를 ‘신정거처(腎定居處)’라고 하는데, 내분비계의 기능 이상이 비뇨생식기계의 문제로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카페문화에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인간행위의 교우능력과 거처능력의 새로운 모색 또한 이 모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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