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농촌 맛·기차 여행’
농촌 맛·기차 여행에 참여한 캄보디아 출신 다문화가족들이 지난 10월 24일 충남 예산의 알토란 사과마을의 과수원에서 사과 수확을 하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농촌 맛·기차 여행에 참여한 캄보디아 출신 다문화가족들이 지난 10월 24일 충남 예산의 알토란 사과마을의 과수원에서 사과 수확을 하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도시에 사는 다문화 주부·아이들
충남 예산 알토란 사과마을 체험
머리만큼 커다란 사과 직접 수확

고국과 다른 한국 농촌의 맛·풍경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만족’
열대지역 없는 가을 바람도 즐겨


“엄마 이거 좀 봐. 사과가 머리만큼 커요.”

지영이는 나무에 달린 사과가 신기한 듯 소리를 질렀다. 다른 아이들도 까치발을 하고 나무에 달린 잘 익은 사과를 골라 따는 데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지영이와 함께 온 이수빈 씨는 캄보디아 출신이다. 3년 전 한국으로 귀화해 이젠 어엿한 한국사람이다. 한국 생활만도 만 9년째. 한국말은 물론 행동도 한국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국내에서 취업 교육을 받고 서울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직장인들처럼 집에서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부족하기만 하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지영이를 낳고 지영이에게 한국의 농촌을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었다.

지난 10월 24일 수빈 씨 가족 이외에도 농협중앙회에서 진행하는 ‘농촌 맛·기차 여행’에 참여한 32명 중 다문화 가정 소속이 절반이 넘는다. 이들은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충남 예산에 있는 알토란 사과마을에서 가을 농촌을 제대로 만끽했다.

수빈 씨와 친분이 있는 ‘캄보디아 댁’들이 이번 여행 프로그램에 아이들과 함께 왔다. 이들은 농촌에 거주하는 다른 다문화가정과 달리 서울·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남편과 한국 시댁을 겪으며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됐지만, 도시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한국의 농촌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한국에 시집온 지 3년째 되는 찬 시나 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농촌을 경험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며 “수빈 씨의 추천으로 이번 맛·기차 여행에 나섰는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들이 과수원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동안 캄보디아 댁들은 한 가족당 4㎏의 사과를 수확했다. 수빈 씨는 “사실 한국 내 다른 관광지를 가본 적은 있지만, 충남 예산까지 올 기회는 별로 없었다”며 “가을 날씨가 아주 좋은 데다 단풍도 아름답게 물들어 농촌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댁들은 과수원 한쪽에 둘러앉아 수확한 사과를 시식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로만 연락하던 친구들을 이런 기회에 만나 서로 한국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소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 한국생활 기간은 제각각이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나이의 젊은 엄마들이 겪는 한국생활의 어려움은 다들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의 ‘수다’가 너무 즐겁다.

경기 성남에 거주하는 소미령(귀화) 씨 역시 캄보디아 출신으로 남편과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과 평소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게 아쉽다. 아파트 단지만 바라보고 사는 아이들에게 농촌을 경험해볼 기회를 주고 싶어 시간이 날 때마다 지방을 방문하고 있다. 소 씨는 “과수원이나 농장과 같은 곳을 무척 좋아한다”며 “도시 아파트 모습만 보고 사는 아이들에게 농촌을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소 씨는 “나 역시 한국의 농촌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둘러보고 느끼려고 노력한다”며 “농촌에서 나는 농산물도 좋고, 공기도 너무 맑아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맛·기차 여행은 사실 이런 도시 다문화가정에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크다. 지금까지 농촌에 있는 다문화가정에 대해선 많이 언급이 됐지만 도시 다문화가정에 대해선 다소 관심이 덜했던 것이 사실. 농협중앙회 등에서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여러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농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도시 다문화가정, 특히 어머니가 외국 출신인 경우 아이들에게 한국 농촌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경험이 없어 안타까웠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소 씨처럼 포도농장이나 과수원을 애써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한국 농촌을 보여 주는 가정이 아닐 경우 아이들은 농촌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가끔 엄마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캄보디아의 농촌을 이야기해줄 때도 있지만 열대 지역의 농촌과 한국의 농촌은 너무나 달라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잦다는 게 이들의 고충이다. 한국인 남편의 고향이 농촌인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 남편마저 서울 혹은 도시 출신이면 아이들이 한국의 농촌을 이해할 기회는 좀체 얻기 어렵다.

사과 농장에서 수확체험을 마친 이들은 인근 수덕사로 이동했다. 수덕사 인근에 있는 산채식당에서 산채 비빔밥과 더덕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평소 비빔밥은 많이 먹어봤지만, 산나물을 재료로 한 산채 비빔밥과 향긋한 더덕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는 캄보디아 댁들은 이 시골 밥상에 환호했다. 이날은 단풍이 절정에 달해 수덕사도 유람객들로 붐볐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 출신이어서 사찰이 낯설진 않지만, 아이들은 넓은 절 마당이 신기하기만 하다. 소 씨와 함께 온 캄보디아 댁들은 캄보디아 출신 근로자가 많은 경기 안산의 외국인 인력상담센터에서 통역원으로 일하고 있다. 상담센터가 평일 휴일 구분 없이 문을 열다 보니 이들이 마음먹고 휴가를 내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가을은 이들에게 언제나 아름답다.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은 열대지역에선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추진한 이희용 맛·기차여행 가이드는 “도시 거주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농촌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이번 프로그램의 의의가 있다”며 “아름다운 한국의 가을 농촌을 다문화가정 어머니, 아이들이 제대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예산 =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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