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 체육부장

1992년 이른바 한국야구의 황금세대가 고교를 졸업했다. 당시 박찬호와 차명주는 한양대, 조성민은 고려대, 임선동과 박재홍은 연세대, 손경수는 홍익대, 송지만은 인하대 등 대부분 대학을 선택했다. 정민철이 빙그레(한화), 염종석이 롯데에 입단한 것을 제외하면 당시 스카우트 싸움은 대학의 완승이었다.

하지만 대학의 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이대진, 손민한, 노장진 등 이른바 투수 빅3 중 이대진이 해태(KIA), 노장진이 빙그레에 입단했다. 1994년엔 김재현과 신윤호가 LG, 주형광이 롯데, 이호준이 해태, 심정수가 OB(두산) 등 고교 톱 랭커가 모두 프로를 선택했고 이때부터 고졸 프로 입단이 대세가 됐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프로야구 신인왕 15명을 살펴보면 고졸(12명) 출신이 대졸(3명)을 압도한다. 올해 억대 연봉자 140명 중 고졸은 62%인 87명이나 된다. 연봉 랭킹 상위 1~5위는 모두 고졸이다. 최고의 무대인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LA 다저스)과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도 고졸이다.

야구는 단체 종목이지만 개인 종목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반대로 축구는 철저한 단체 종목이다. 그래서 축구에선 고졸 출신이 대졸 출신 선배, 형님들과 손발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고종수가 1996년 수원 삼성, 이동국이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면서 ‘편견’을 깨뜨렸다. 오는 12일 수원에서 열리는 미얀마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 출전하는 축구국가대표 중 기성용(스완지 시티),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 구자철과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남태희(레퀴야 SC), 석현준(비토리아 FC) 등 ‘유럽파’는 대학을 거치지 않았다.

프로배구에선 2년 전 정지석이 신인드래프트에서 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1호 고졸로 등록됐고, 올해 현일고 3학년인 한병주가 삼성화재에 입단했다. 정지석은 2년 동안 기량을 갈고닦아 올 시즌엔 당당히 주전을 꿰찼고, 지난 시즌 4위였던 대한항공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열렸던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일상고 3학년인 송교창이 전체 3순위로 KCC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문했다. 1군에선 이항범이 2004년 모비스, 한상웅이 2005년 SK에 고졸로 지명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항범은 고교 졸업 후 병역을 마친 상태였고, 한상웅은 미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교포다. 따라서 순수 고졸로는 송교창이 처음 프로농구에 입단한 셈이다. 19세인 송교창은 지난 3일 열렸던 2015∼2016시즌 KCC 프로농구 D리그 1차전에서 삼성을 상대로 30득점을 퍼부었고, 11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비록 2부 리그지만 송교창은 형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펼치면서 데뷔전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송교창이 프로에 잘 적응하고 정지석처럼 성장한다면 제2, 제3의 송교창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포츠에선 기량과 잠재력을 ‘고용’의 판단 근거로 삼는다. 학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경쟁하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그래서 스포츠는 ‘고졸 만세’다.

jhlee@munhwa.com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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