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이른바 ‘쿡방’(cook, 요리방송)의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는 칼이다. 요리사의 칼 다루는 솜씨만 보면 그가 고수인지 아닌지 금방 판가름난다. 요리사에게 식도(食刀)가 있다면 의사에겐 수술용 메스가 있다. 언론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부정부패를 도려낼 때도 ‘메스를 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검찰의 심벌마크도 칼이다.
검찰의 심벌마크는 다섯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각 기둥의 끝은 조각용 칼처럼 날카롭다. 직선인 기둥은 대나무의 곧음을 상징한다고 하며, 다섯 개의 기둥은 정의·진실·인권·공정·청렴을 뜻한다고 한다. 특히, 상하가 모두 뾰족한 중앙의 기둥은 칼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날카로운 심벌은 메스와는 달라 보이고, 오히려 인명 살상용 창(槍)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검찰 하면 자연스럽게 칼이 연상된다.
임기를 한 달 정도 남긴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 3일 검찰 확대간부회의에서 그동안 강조해 온 ‘외과수술식 특별수사’ 원칙을 다시 거론했다. “문제가 드러난 특정 부위가 아니라 사람이나 기업 전체를 마치 의사가 종합진단하듯이 수사하면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초래하게 된다”면서 “수사의 공익적 목적에 배치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고 성공 여부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자탄(自歎)했다. 이전의 나쁜 수사 관행이 검찰 총수의 지휘로 임기 중 과연 얼마나 개선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그 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몇몇 주요 사건에서는 여전히 별건 수사, 저인망식 수사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지휘 방향은 옳다. 기업 수사는 실제론 실패한 경영에 대한 형사적 처벌인 경우가 많았다. 이전의 사례를 보면 창조적인 영업 방식을 창안했지만 결국 실패한 경우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고 충분한 시장조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기업의 이사들이 배임죄 처벌을 받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 최초로 스마트폰을 창조한 스티브 잡스에게 왜 사업성이 증명되지 않은 물건을 발명하고, 왜 시장조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라는 것과 같다. 기업의 창의적 시도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다.
검찰은 부정과 부패를 진단하고 수술한다. 수술 성공을 위해선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부정부패나 범죄 등과 관련된 기업마저도 수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환자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한다며 온몸을 구석구석 찔러보는 이른바 찔러보기 수사, 주요 혐의점을 벗어난 별건 수사, 세우 잡듯이 세세한 부분을 전부 뒤지는 저인망식 수사는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검찰은 이러한 수사 기법을 환부(患部)에 대한 진단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칼을 가진 검찰이 환부라고 믿는 데를 찾을 때까지 이곳저곳을 찔린다. 검찰이 부패하여 괴사(壞死)한 부위를 찾아내기도 전에 그 기업은 이미 반쯤 죽어버린다. 그래서 검찰총장도 ‘환부만 도려내는 이른바 외과수술식 특별수사’를 임기 내내 강조한 것이다. 검찰이 칼을 다루는 솜씨도 숙련된 의사가 메스를 다루거나 쿡방의 출연자처럼 예리하고 산뜻해야 한다. 다행히 1990년대에 들어 갑자기 활성화된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수사도 최근에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법무부 관계자의 말로는 60% 정도가 줄었다고 한다. 이는 검찰 쪽에서의 비정상의 정상화다. 차기 검찰총장도 이러한 수사 방침을 그대로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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