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지지 학자들 신상털기 논란 “국정화 지지하지만…
내 이름은 꼭 빼달라”
“제자들이 반대한다”
고사하는 교수도 다수

참고서로 연결된 카르텔
“국정 얼마나 가겠나…
다시 검정으로 바뀔텐데
왕따 당하면 기회없어”

대표적 보수성향 학자
“취지 훼손 우려” 거절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을 맞은 역사학계가 집필진으로 결정되고도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등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학계 내부에서 관행처럼 내려오는 특유의 ‘끈끈함’ 때문이다. 각 대학 역사학과는 입학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역사 답사를 떠난다. 이 같은 행사를 하면서 서로 강한 유대관계로 엮여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대파의 공격이 무서워 국정화를 지지하면서도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등 ‘학자’로서의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일 서울지역 한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한 교수는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지만 신문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자신의 이름이 기사화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는 ‘국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이 언론에 나오기만 하면 신상털기 등 사이버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터넷상에는 국정화를 지지하는 교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제1, 제2의 이완용, 송병준이 돼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려는 어용 교수들’ ‘한 자리 받으려고 추잡하게 모였다’ ‘역사오적으로 기억될 것’ 등 극단적인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4일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표 집필자를 발표했지만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집필에는 참여한다고 밝히면서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들이 집에까지 찾아와 집필자 발표 자리에 나가는 것을 만류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자들이 3일 오후 10시부터 말려야 한다며 모였다고 한다. 오전 2시부터 한 시간에 40명씩 전화를 걸어왔다”며 “(브리핑장으로) 가기 직전에 제자 2~3명이 집으로 찾아와 ‘가지 말라’고 몸으로 막았다. ‘요새 일이 하도 많으니까 극한 상황에 가면 안 된다’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명망 있는 역사학자가 집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제자들이 강박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제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집필진 참여를 고사하는 학자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상에는 최 교수 등이 집필진으로 참여하자 ‘다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곡학아세를…’이라는 등의 비난이 올라오고 있다.

고교 한국사교과서 집필을 하고 이와 관련된 참고서적 판매로 연결된 역사학계의 ‘카르텔’도 집필진 찾기를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학계에서는 검정 고교 한국사교과서의 경우 집필진 1인이 200만~400만 원 정도의 집필료를 받지만 참고서를 판매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집필진에 들어가기 위한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교수나 교사들 사이에는 ‘국정화 교과서가 얼마나 간다고 보느냐. 몇 년 뒤면 다시 검정교과서로 바뀔 텐데 그때 교과서를 집필하고 참고서를 팔아 돈을 벌려면 이번 국정교과서 집필에는 절대 참여하면 안 된다’는 말이 오간다”고 전했다. ‘왕따’를 당하면 다음에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싶지만 학계 전체를 위해 ‘고사’하는 경우도 있다. 보수 성향의 한 학자는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이 우파 학자로 분류돼 있는 상황에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경우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원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부 우파 학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집필 참여를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계에서는 독특한 성향을 가진 역사학계에서 이 같은 현상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역사학을 전공한 교수들은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고 제자들과의 스킨십도 많이 하는 등 다른 교수들과 성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학계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자 공모·초빙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말하는 교수들이 있다”고 전했다.

신선종·김영주 기자 hanul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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