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훈 / 연세대 의대 교수, 대한산부인과 학회 부인종양위원장

유일하게 예방이 가능한 암, 자궁경부암의 예방관리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 중 생활밀착형 사업에 만 12세 이하 어린이에 대한 자궁경부암 백신(HPV 백신) 무료접종 계획이 포함된 것이다.

전 세계 임기여성(15∼44세) 중에서 여성암 사망률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자궁경부암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약 3300명의 여성이 새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있으며, 1100명의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으로, 보다 효과적인 자궁경부암 예방과 치료를 위한 변화의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 왔다. 특히, 최근에 진행된 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수렴하고, 예방접종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궁경부암 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NIP)사업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의견이 바로 이번 예산안에 반영된 만큼 자궁경부암 백신의 국가접종사업은 충분히 환영받을 만하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계획’이 계획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이 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국민 건강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내 연구 조사를 보면, 성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낮아짐에 따라 젊은 연령대의 HPV 감염률은 50%에 가깝다. 이는 자궁경부암 환자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실제로 자궁경부암의 전단계로 알려진 자궁경부 상피내종양으로 진단 및 치료를 받은 환자가 2010년 기준 2만8050명으로, 이는 전년 대비 10.5%나 증가한 수치다.

또한, 자궁경부암 환자에서 35세 미만의 젊은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2배 높아졌다는 보고도 있고, 젊은 연령대의 자궁경부암 진단 환자 점유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 진료실에서 20∼30대 자궁경부암 환자를 보는 일은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HPV 감염으로 발생하는 생식기사마귀 환자 수 역시 2001년 질병관리본부가 모니터링을 시작한 이래로 남녀 모두에게서 각각 6.9배, 8.4배 증가했다. 이 환자들의 진단 및 치료 비용뿐만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고통까지 고려해 본다면 현재 국가가 부담하고 있고, 또 앞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러운 일은 HPV 백신 접종을 통해 질환 발생 자체를 매우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질환 발생 자체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예방접종사업의 대상인 만 12세 연령대의 경우, 기존 3회 접종 대신 2회 접종으로도 우수한 면역성이 입증됐기 때문에 국가접종사업의 비용경제성 효과는 충분하다고 본다. 현재 전 세계 64개국에서 HPV 백신을 NIP로 도입해(OECD 34개 회원국 중 29개국) 자궁경부암을 포함한 다른 HPV 질환 발생 감소 효과를 똑똑히 보고 있다. 호주의 경우, NIP사업을 시행한 지 7년 만에 대표적인 HPV 질환인 생식기사마귀 발생이 박멸 수준으로 감소했고, 2년 만에 고등급 상피내종양 발생 위험이 80%까지 감소한 것이 좋은 사례다.

정리하면 HPV 백신의 국가예방접종 프로그램 도입은 전체 지역 사회에 유포돼 있는 바이러스의 양 자체를 줄이는 효과를 만들어 자궁경부암 및 관련 질환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적·의료적 비용 손실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HPV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 차질없이 시행돼 국내에서도 ‘줄어든 자궁경부암·생식기사마귀 발병률 데이터’ 발표를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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