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대한항공공사 인수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고 조중훈(오른쪽 단상 위)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 제공
1969년 대한항공공사 인수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고 조중훈(오른쪽 단상 위)한진그룹 회장. 한진그룹 제공

조 회장이  1990년 한부호 진수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진그룹 제공
조 회장이 1990년 한부호 진수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진그룹 제공

故 조중훈 회장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 출간

한진그룹을 창업한 정석(靜石) 조중훈 회장의 일대기를 정리한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사진)가 출간됐다. 지난 1일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진그룹은 70년 전 사업을 시작한 조중훈 회장의 창업정신과 경영철학을 되새기기 위한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이번 전기를 출간했다고 6일 밝혔다. 창업주의 업적을 통해 그룹 성장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대한민국 교통·물류산업의 발전사를 조명하기 위해 2010년부터 전기 출간을 준비해 왔다고 한진그룹 측은 설명했다.

한진그룹에 따르면 책은 크게 조 회장의 어린 시절, 한진상사 창업 과정, 베트남 전장 수송작전, 대한항공 인수와 발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용 하나로 사업을 시작한 청년 조중훈의 도전과 열정, 수송보국의 창업정신과 경영철학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취지다.

◇“소년은 바다를 꿈꾸었고 바다는 소년의 꿈을 품었다”= 책은 소년 조중훈이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해원양성소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기술을 익히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일본 조선소의 수습기관사로 발탁돼 열입곱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이후 외항선의 선원이 돼 중국 상하이(上海)와 홍콩 등을 항해하며 손님의 마음을 읽는 유대인 장사법과 철저한 품질관리라는 개성상인의 정신을 배웠다. 세계 문물을 접하며 사업의 철학을 마련한 조 회장은 1945년 11월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의미를 담은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이후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쟁이 기회임을 포착하고 모든 걸 걸었다.

한진그룹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조 회장은 1965년 12월 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으로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동남아 순방을 하면서 사업상의 중대한 계기를 맞게 된다. 마지막 방문지였던 베트남의 퀴논(꾸이년) 항에서 하역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외항에 정박 중인 30여 척의 화물선을 보는 순간, 한진상사가 퀴논 항의 군수품을 하역·수송하면 큰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조 회장은 펜타곤을 방문하고, 퀴논에 파병 중인 미군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1966년 주월 미군사령부와 790만 달러의 군수물품 수송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1971년 종전 시까지 5년간 벌어들인 외화는 총 1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25~200달러 안팎이었다.

◇일생일대의 모험…세계의 하늘길을 연 ‘대한의 날개’=‘적자투성이 국영 항공사를 구할 사람은 조중훈밖에 없었다. 그 시절 한국에서 항공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킨다는 것은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했을 때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육중한 쇳덩어리가 새처럼 하늘을 날아오른 것처럼 그는 척박한 땅에서 고사 직전의 항공사를 이륙시켰다.’(책 본문 중에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는 데는 사업가로서의 자질과 다른 의미의 결단력이 필요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11번째 부실 항공사였고 당시로선 항공운송 사업의 미래도 불투명했다. 정부는 조 회장이 한국항공을 설립했던 경험이 있고 그동안의 사업 과정 및 수송산업 성과를 감안해 조 회장을 대한항공공사 사업자로 주목하고 있었다.

조 회장은 여러 번 당국의 대한항공공사 인수 요청을 고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용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나라 국적기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다”라는 권유를 받아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조 회장은 당시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에게 “돈을 벌자고 시작했다가 밑지는 사업도 있고,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임을 강조했다.

◇“선장이 키를 놓지 않는 한 전진하는 배는 흔들리지 않는다”…해운 사업 진출 = 조 회장은 1987년 11월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선주를 한진이 인수할 것을 권유받자 한국의 수송업체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면서 타산적인 차원으로 관계자들의 고뇌와 업계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대한선주를 인수해 한진해운과 합병했다. 대한선주의 채무까지 떠안은 한진해운은 선박별 운항스케줄, 예약현황, 화물추적 등의 업무 전산화 및 선원들의 근로조건 개선 등을 통해 인수 2년 만인 1989년에는 경영정상화를 이뤄 126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조 회장의 사업 철칙은 ‘모르는 사업은 절대 손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이 설립하거나 인수한 회사들은 수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이를 보조할 수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인간미 있는 사람에겐 사업도 예술이다”=‘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성공을 거두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책 본문 중에서)

조 회장은 평소 “사업은 지고도 이기는 것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다”라는 말을 즐겨 했다. 책은 한진이 주한미군 용역사업에 참여한 1956년 무렵 한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트럭 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겨울 파카 1300여 벌을 ‘차떼기’로 남대문시장에 팔아넘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조 회장은 직원 한 명을 남대문시장에 상주시키고 도난당한 물건이 시장에 유통되면 전부 사들이도록 했다.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봤지만 미군들로부터 확고한 신용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밖에 책에는 베트남 퀴논 항 하역 현장 및 한·일경제외교, 국산전투기 제작 등과 관련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일화와 사진들도 다수 수록돼 있다. 추천사를 쓴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며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독서광, 조중훈 회장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우리나라 수송 산업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등 대한민국 경제·외교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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