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권 /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국정(國定)으로 결정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역사전쟁’을 보면 아기는 버리고 태(胎)를 놓고 싸우는 것 같다.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냐, 대한민국이 수립된 1948년이냐 하는 건국일 논쟁을 보자. 초등학교 상급반만 돼도 국가의 3요소를 다 안다. 안타깝게도 임정은 주권·영토·국민 어느 하나 갖추지 못했고, 그래서 ‘임시정부’가 아닌가. 대한국민(민족:nation)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피눈물 나는 임정의 투쟁사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헌법 전문도 그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했다. 법통을 이어받는다는 건 자유·독립을 쟁취·수호하려는 임정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겠다는 것이지, 국가를 물려받는다는 게 아니다. 국가 3요소를 갖춰 대한민국의 수립을 선포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임은 물론이다.

단독정부 수립 반대도 그렇지만, 제주4·3사건과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극렬한 전국적 방해투쟁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힘들게 건국된 사실은 세상이 다 안다. 남한의 적화를 꾀한 6·25 전쟁과 그 밖에 북한의 다양한 도전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을 지켰고, 오늘날 우리가 자랑해 마지않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기적적 업적을 대한민국의(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 틀 위에서 이뤄 냈다. 우리와 대척 관계에 서는 체제(공산전체주의·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역사 속에 사라졌고, 자기 인민 배 곯리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우리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난 지 이미 오래다. 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역사 주장은 대한민국을 이끄는 정치지도자의 주장으로나 학문하는 학자의 이론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지금 역사 논쟁이 고교교육을 대상으로 해 전개되고 있다. 대학이나 초등학교와 차별화되는 고교교육의 본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고난을 이기며 건설해온 대한민국을 찬란한 미래로 향해 자신 있게 이끌며 지켜나갈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민중사관, 투쟁이론 등 다양한 견해는 지적·육체적으로 성숙한 대학, 특히 대학원 단계 교육에서나 접해야 할 학문적·방법론적·이념적 패러다임의 문제다. 굳이 민중사관이나 투쟁이론으로 풀이한 역사교육을 지적·정서적으로 미숙한 고교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체제에 적대적인 투사를 기르겠다는 생각과 다름없다.

이른바 역사학자들이 떼 지어 고교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성명하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근현대사(史)가 자기들의 전유물이나 되는 듯이 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고대사나 삼국시대, 고려사, 조선사라면 전문적인 역사학자의 주장이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일제 지배, 해방과 분단, 미 군정, 대한민국 수립, 6·25 전쟁의 참화, 4·19혁명, 장면정권, 군사혁명, 산업화, 민주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탈북 행렬 등을 직접 보고 듣고 배우고 체험하며 또 열심히 공부한,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한둘 아니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교묘히 폄훼하고 김일성·주체사상 등에 관한 친절한 좌편향 친북적 서술을 ‘다양성’과 ‘검정’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고교 교과서에 집어넣을 수 있는가? 그리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국정’이면 꼭 독재와 친일을 미화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전체주의 독재와 권위주의 독재의 같고 다름을 알고나 독재를 말하는가? 국정화는 제대로 된 대한민국사를 고교생에게 선사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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