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아치아라의 비밀사회적 현안에 대한 침묵이나 방관은 암묵적 동의와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관여해야 할 때 방관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SBS 드라마스페셜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허울뿐인 평화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시킨 마을의 비참한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사건은 ‘범죄 없는 마을’로 알려진 ‘아치아라’에서 암매장된 백골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캐나다 국적의 한소윤(문근영)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치아라 발신이 찍힌 항공우편을 발견한다. 봉투에 담긴 20년 전 자신과 가족의 죽음에 대한 교통사고 기사를 보고 혼란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아는 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를 아치아라의 해원중고 영어 원어민 교사로 한국에 들어온다.

캐나다에서 온 젊은 여선생 한소윤 때문에 아치아라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그리고 2년 전 실종된 미술학원 여선생 김혜진(장희진)이 백골 사체로 발견되자 마을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경기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매스컴이 떠들썩해도 평화를 유지하던 아치아라가 쑥대밭으로 변한 것이다. 백골 사체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던 아치아라 파출소 순경 박우재(육성재)의 도움으로 죽은 김혜진이 한소윤이 찾는 언니 한소정임이 밝혀지고, 이와 함께 한소윤과 한소정이 피를 나눈 자매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혼란이 가중된다.

김혜진의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고사인지, 만약 타살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을사람들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지만,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점점 더 커져 간다. 해원철강 대표이자 아치아라의 도의원으로 차기 도지사를 노리는 실질적인 권력자 서창권(정성모)은 김혜진과 불륜 관계였고, 서창권과의 결혼으로 아치아라의 신데렐라가 된 윤지숙(신은경)이 그녀의 우아한 이미지와 달리 김혜진과 난투극을 벌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한 윤지숙의 씨 다른 동생이자 삼거리 약국 약사 강주희(장소연)의 수상쩍은 행동이 이어지는 와중에 그녀가 한소윤을 아치아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그런가 하면, 서창권의 아들이자 해원중고 이사장인 서기현(온주완)은 집안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죽은 김혜진과 관련된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김혜진의 죽음에 얽힌 마을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가족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실종 2년 만에 백골 사체로 발견된 김혜진의 죽음과 관련된 아치아라 마을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은폐되고 왜곡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과연 빛을 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김혜진에게 유전된 ‘파브리병’이 미스터리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찌 보면, 비밀스러운 아치아라 마을은 진실 앞에서 침묵하고 방관하는 희귀병에 걸린 사회를 환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사회가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면, 진실을 외면한 혹독한 대가일 것이다. 허울뿐인 평화를 위해 한 여자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하는 마을사람들과 억울한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않는 지금 우리는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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