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 / 세종연구소 소장

지난 2일 3년여 만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가능한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겠다고 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며 많은 정치적인 파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으로 해결됐다면서 이에 대한 한국의 최종 해결 보장,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미해결 사안이며, 일본이 가해자인 만큼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 ‘해결(解決·solve a problem)’이라는 표현보다는 ‘타결(妥結·reach a settlement)’이라는 말로 절충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내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의 내용에 대해 서로 함구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신문에서 한·일 정상회담의 내용들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 직후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문제는 해결됐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한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문제, 수산물 규제 등 할 말은 했다는 등 국내 정치를 의식한 발언이 솔솔 새어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은 언제나 골포스트(goal post)를 움직이기 때문에 연내 타결은 어렵다는 말이 일본에서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을 볼 때 위안부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국내 정치의 부담을 뛰어넘지 않고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정부의 행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몰두하는 것 같아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형태로 타결지어야 할지는 잘 알고 있다. 해결의 관건은 타협안에 대해 양국의 리더십이 정치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결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우파 지지 세력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쳐 정권 유지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마저 있다고 본다.

더구나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식지 않고 계속됨으로써 아베 총리의 정치적인 결단은 환영을 받기보다 오히려 정치적인 부담이 될 가능성이 명백하다. 이런 이유로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해결책이 되지 않는 한 교섭자의 책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차기 대통령 선거와도 연관돼 여당으로서는 악재(惡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 간 현안인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질서를 만드는 그랜드 디자인과도 연관돼 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이 한·일 관계 개선에 초미의 관심을 보인 만큼 위안부 문제 해결은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국제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다차원의 방정식이 된 것이다. 즉,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한·일 관계 개선과 함께 더 나아가서는 미국, 중국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우리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국제 관계를 고려한 유연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적 합의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동북아 질서의 판짜기를 통해 한·일 관계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민도 감정에 치우친, 100% 만족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는 한국의 국익(國益)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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