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매(한국형전투기, KF-X) 사업의 실패는 전투항공력이 비슷한 시기에 완제품을 대량 수급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을 뜻한다.” 지난 7월 열린 연세대 항공우주력 국제학술회의서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보라매 사업 실패는 한국 공군의 자생적 안보자산 확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KF-X 사업 논란의 핵심은 국내 우주항공사업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불분명한 데서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최 교수가 “이 사업은 ‘전력화 우선’과 ‘국산화 우선’ 경로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며 또 다른 화두를 던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국산 전투기 개발 목적은 3가지였다. 공군의 숙원이던, 우리 손으로 정비하고, 성능개량이 가능하며, 우리가 직접 정비를 못할 경우 정비시설을 국내에 만들어 정비하자는 것이었는데 핵심기술 이전 논쟁으로 본말이 전도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홍 대표는 “차기전투기(F-X) 사업 기술이전 절충교역과 KF-X 사업을 연계시키면서 ‘기술이전을 통해 KF-X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무리한 가설을 세운 것이 화근이 됐다”고 분석했다. 경쟁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전환된 순간, 이 가설은 접고 ‘F-X 사업은 KF-X 사업 기반 조성을 위한 절충교역’ 정도로 물러섰다면 이런 해프닝과 착오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전투기 기술개발 과정과 협상에 어두운 방위사업청의 판단 착오야말로 기술이전 책임이 없는 애꿎은 록히드마틴에 대한 반감과 대미 굴욕외교 논란으로 비화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한국 방위산업 정책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돼도 모자랄 판에, 방사청 직속 사업단으로 어떻게 행자부, 기재부, 국방부, 국회와 잘 공조해 그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탄식도 나온다. 개발비용과 목표가격을 정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공군의 무리한 요구로 쌍발엔진으로 결정되다 보니 개발 리스크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10년 뒤 수출시장을 고려해 단발엔진을 요구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업체의 요구는 소요군의 목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최 교수는 “이 사업은, 전투항공력 획득사업의 악순환을 개선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꼬이고 있다.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는 100% 기술이전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핵심기술을 제외한 21개 기술마저 인도네시아 이전에는 부정적이다. 현 조건에서 록히드마틴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보라매 사업 성공비결은 틈새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 전투기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 정부가 하이급 전투기인 F-35 버전만으로 공군·해군·해병대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미들급 전투기’ 틈새시장이 생긴 것이다. 한·미가 훈련기 시장에 이어 F-16 플러스급 전투기 공동개발로, 폐쇄될 운명의 미국 내 F-16 생산·정비라인을 국내에 이전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 유력한 대안이다. 총리실 직속으로 사업단을 구성해 단발엔진 전환 등 개발 리스크를 줄일 최적의 플랜B를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과욕으로 모든 걸 잃는 것보다 차선책으로 성공하는 것이 훨씬 낫다.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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