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만학도’ 이화자 할머니
서른에 남편 사별 두 딸 키워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
“제때 못 배운 게 평생 恨…”

청소일 하며 3년前 책과 씨름
수험표 들고 “꿈도 못꿨는데”


“끝까지 왔네, 끝까지 왔어. 여기까지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홍익대사범대부속여고에는 시험 전 고사장 위치를 확인하러 온 학생들로 붐볐다. 앳된 10대들 틈에서 일성여고 3학년 이화자(72·사진)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책가방에 고이 보관했던 수험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 할머니는 고사장 위치를 확인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수험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끝까지 왔네, 꽃을 피웠어”라며 울먹였다. 짧은 외마디 속에 할머니가 지나온 고생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었다.

이 할머니는 서른 살 때 남편과 사별하고 두 딸을 홀로 키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배움의 전부였던 할머니는 평생을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 할머니는 “배운 게 없으니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저임금은 물론이고 온갖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3년 전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할머니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이 할머니는 “외래어로 가득한 길거리에서 나는 눈뜬장님이었고, 배운 사람들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였다”면서 “책을 다시 손에 잡은 3년 전 나는 다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두 딸을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 지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학교 수업시간을 빼곤 건물 청소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수능 당일에도 할머니는 오전 5시까지 일을 하고 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은커녕 웃음만 가득했다. 이 할머니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학교 갈 생각을 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면서 “3년의 짧은 시간이 지난 30년보다 훨씬 행복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대학까지 마치고 싶다는 할머니는 이미 대학 3곳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할머니는 “비록 나이는 많지만 배움에 대한 의지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평생의 꿈을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시험 전 컨디션 조절이 한창인 다른 수험생들과 달리 12일 새벽 일터에 가야 하는 이 할머니는 예비소집을 마친 후에도 “아직 못다 한 공부가 많다”며 다시 학교로 향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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